"아득할 때는 오히려 다들 '통일' '통일'하더니, 이제 정작 가능성이 비치니까 시들해 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통일꾼 부부' 유대지(劉大知ㆍ51ㆍ한국보훈복지공단 발간과장) 이순필(李順必ㆍ51)가 신사년(辛巳年) 첫날 신새벽의 칼바람을 뚫고 어김없이 '38선 자동차 횡단길'에 나선다. 3년전부터 매달 빠짐없이 월례행사로 치러온 일이다.
하지만 마음은 웬지 전처럼 가뿐하지 않다. 각종 '통일 이벤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반도를 가로지른 철책은 한치 변화가 없고, 통일 가는 길의 한쪽 버팀목인 나라경제마저 크게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 무엇보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통일 놀음'이냐"는 냉소적 시선이 못내 서운하다. 통일은 결코 그런 '계산'이 아니라는 게 이들 부부의 신념이다.
유씨 부부는 남북대결로 혈육을 잃은 한의 '동지'. 유씨의 아버지는 1949년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로 근무하던 중 빨치산과 교전하다 전사했고, 부인 이씨의 오빠는 한국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평생을 고생하다 5년전(당시 63세) 숨을 거뒀다.
가족사로 보자면 누구보다 북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입장이었지만, 이들은 한을 도리어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는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1994년 '첫 통일염원 사업'으로 휴전선 155마일 도보 횡단을 시작했다.
31일 오후 6시 승용차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을 출발한 이들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이날 밤 늦게 위도 38선에 위치한 강원 양양군 하광정휴게소에 도착, 차 안에서 잠시 새우잠을 청한 뒤 1일 새벽 4시부터 '장정'에 나선다.
38선과 인접한 한계령, 양구, 소양강어귀를 거쳐 사창, 포천, 전곡, 문산을 지나 임진각에 이르는 16시간 코스가 이들이 잡은 여정이다. 차 밖에 '조국은 통일되어야 한다'고 쓰인 플래카드와 한반도기(旗)를 내걸고 차 안에는 유씨 아버지의 사진을 모셨다.
"미국에서도 거침없이 통일대장정을 했었는 데.. 올해는 반드시 개성, 옹진반도까지 통일의 씨앗을 뿌려 놓고 싶습니다."
유씨는 지난 해 광복절 전후로 자동차에 '조국통일' 깃발을 달고 뉴욕, 워싱턴, 콜럼버스, 캔사스시티, 덴버, LA로 이어지는 북미대륙 38도선 4,000㎞를 10일만에 횡단해 미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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