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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링컨, 노예해방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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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링컨, 노예해방선언

입력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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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1월1일, 남북 전쟁의 전황이 북부에 유리해지고 있던 시점에 미합중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의 해방을 선언했다. 링컨은 이 선언을 통해 반란 상태에 있는 여러 주의 노예를 전부 해방한다고 밝힌 뒤, 해방된 흑인들에게도 옛 주인들에 대한 폭력을 삼가고 적절한 임금으로 계속 일할 것을 당부했다.이 선언으로 흑인들도 연방 군대에 입대할 수 있게 됐다. 이 노예해방선언은 내전에서의 전략적 의의도 지녔는데, 그것이 노린 것은 남부의 사기 저하와 남부 여러 주의 연방 조기 복귀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1830년대부터 잡지 '해방자'를 중심으로 전투적 노예해방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노예해방의 실현은 북부의 산업자본가와 남부의 대지주 사이의 경제적 이해대립이 전쟁으로 폭발한 뒤에야 형식적으로나마 이뤄진 셈이다.

노예는 인격이 부인된다. 그래서 노예는 물건처럼 소유와 매매와 양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치 가축이나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노예는 생명이 있는 도구, 말할 줄 아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에나 역사의 특정한 단계에는 노예제 사회가 존재했다. 그러나 근대의 노예 문제는 16세기 이래 유럽인들에 의한 노예 사냥ㆍ노예 무역과 함께 아메리카에 확대된 식민지 노예제와 주로 관련된다. 노예제 폐지 운동은 18세기 초 인간 존중ㆍ인류 평등의 사상과 함께 고개를 들었고 19세기 들어 본격화했다. 영국에서는 퀘이커 교단을 중심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이 활발히 벌어져, 자유주의적인 휘그당의 그레이 내각이 성립된 직후인 1833년 노예 해방령이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노예 해방이 실현됐다.

프랑스에서는 그 이듬해인 34년에 노예폐지 협회가 만들어졌고 48년의 2월 혁명 뒤에 노예의 완전한 해방이 이뤄졌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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