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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 소설 당선작 '잃고, 묽고 희박한'(1)-남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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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 소설 당선작 '잃고, 묽고 희박한'(1)-남문석

입력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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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석作 '잃고, 묽고 희박한'"너, 지금 뭐하고 있지?"

"그냥 쉬고 있어요."

"잘됐다. 담배 한 대씩 피면서 잠시 휴전하자." 일한이 공중전화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일한은 쪼그려 앉으려다가 수화기 선이 짧아 다시 일어선다. 시계를 보았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저 차 따라갑시다"라고 말하고, 이놈을 추격하기 시작한 지 네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꼭 잡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지친다. 하루종일 놈을 쫓아다녔더니 다리가 다 아플 지경이고, 다행히 수금 전이라 가방 안에는 현찰도 얼마 없다.

"좋죠." 진수가 핸드폰을 손으로 더듬어 안테나를 뽑은 뒤,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조금씩 주저앉았다. 진수는 추적자의 전화 목소리가 아까 통화할 때보다 한층 부드러워졌음을 느낀다.

이번에 끈질긴 상대를 만나 여러 번 잡힐 뻔했다. 재수 없이 잡힐 수는 없다. 진수는 자신이 뱉은 담배연기가 허공에서 묽어지고 희박해지더니 오후 햇살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을 본다.

상념에서 깨어나 진수가 말했다. "참, 딸한테서 전화 왔었어요. 딸하고 전화로 무슨, 스무고개 하세요?"

"TV 흉내내는 거야. 요즘 함께 놀 시간이 없어서 말야."

"증권회사에서도 전화 왔었어요. 아저씨, 주식하지 마세요."

"그래?" 일한은 길고도 이상한 하루를 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놈이군. 쫓기는 주제에 들치기한 핸드폰으로 주인 전화까지 다 받아 주고..

"이 자식이, 언덕에 자빠진 호박이 평지에 자빠진 호박 걱정하고 있네." 일한은 욕이라도 해주려다가 말았다. 놈을 구슬리기로 했지 않은가.

"너, 지금 어디야?"

"몰라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어디예요?"

"나도 몰라."

일한은 수화기를 통해 녀석이 후, 하고 담배연기 내뱉는 소리를 들었다. 묘하게 말하는 놈이다. 어디에 있든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공중전화박스로 내리쬐는 햇볕이 따뜻했다. 그놈이 있는 곳에도 햇볕이 내리쬐겠지. 이솝우화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햇볕과 같이.. 그래, 나도 햇볕정책이다. 일한은 동조하는 어조로 말했다.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우린 공통점이 있군."

그리고 되도록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음, 현찰은 빼고 나머지는 돌려줘. 어디에 장소를 정하든지 우체통에 넣든지 하면 되잖아."

"신용카드, 핸드폰, 가방, 현찰까지 돌려 드리죠. 주민등록증만 빼고."

"주민등록증만 빼고? 그럼, 처음부터 신분증이 목적이었어?"

"아아, 아이덴티티만 목적은 아니었죠. 어-, 그러니까," 진수가 말을 더듬자, 진수의 말을 일한이 도중에 자르고 부탁 조로 말했다.

"차라리 반대로 해라, 응?" 그러다가 주민등록증만 달랑 줄까 싶어 덧붙였다. "카드, 핸드폰, 가방은 돌려주고, 현찰은 너 가져. 모레 법원에 갈 때 꼭 있어야 돼, 임마." 그리고 일한이 진수에게 물었다. "돈세탁 하거나 여권 위조하려고 그래? "

"아뇨."

"그럼?"

"그냥 제가 갖고 다녀요."

"자식, 사고 치고 수배중이구나."

"아뇨.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내일부터 전 김일한이 되는 거죠."

"미치겠군. 별 이유도 없이 그냥?" 일한이 자신의 주민등록증에 놈이 자기 사진을 붙인다고 생각하니 꺼림칙했다. "사진도 갈아치울 테지?"

"아뇨. 저는 그냥 벽돌에 갈아요. 사진과 글자가 희미해질 때까지 벽돌에 대고 갈아요."

"맙소사." 일한은 공중전화 박스에 이마를 가볍게 처박았다. 돌아이 중에서 상돌아이를 만났구나. 잠시 뒤에 일한이 말했다. "네가 그럴 시간에 네 또래들은 벽돌에 청바지를 갈아."

공중전화 수화기에서 갈매기 우는 것 같이, 놈이 웃는 소리가 났다. 끼힉, 끼힉, 끽, 끽..

녀석, 웃는 것도 희한하게 웃는군.

"아저씨가 슬슬 좋아지는데요."

"나도 슬슬 소름이 돋기 시작했어."

녀석이 다시 웃었다. 일한이 말은 그리 했지만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참 단순한 놈이야.

"요즘은 시장에서 일하는가 보죠?" 진수가 수금가방에 '동대문시장 상인 야유회'라고 적힌 것을 보고 말했다.

"청바지 다리는 하청 일을 하다가 요즘은 청바지 찢는 일을 하지. 너는 청바지를 어떻게 찢은 거야? 가위나 사포를 사용한 것 같지는 않던데?"

"염산이 튄 자국이에요. 전 멀쩡한 청바지를 찢거나 하진 않아요."

"그래. 나도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옷을 만들고 있는지 찢어버리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지. 사실 찢어질 만한 일을 하다가 찢어져야 하는 게, 그게 청바지거든.

찢어진 청바지 뒤에는 땀이든 싸움이든, 청바지가 찢어지기까지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게 멋있는 거지." 그리고 아쉬운 듯 덧붙였다. "하지만, 요즘은..

카우보이는 사라지고, 패션만 남은 거야." 일한은 자기가 생각해도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자 어깨를 으쓱이며 커다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저는 청바지를 찢진 않지만, 친구들을 이해해요. 아무 스토리가 없어도 가끔 멋있게 보여요.

그건 찢어진 자아를 표현하는 거래요."

그 말을 들은 일한은 전화기를 탕탕 치며 웃었다. "호치키스 심 빼는 돼지발톱으로 총알자국을 만들면서, '이건 우리가 총 맞은 자아를 표현하는 거야, 친구'라고 말할 걸 생각하니 우습군.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네 친구 말대로라면 어른들은 그 찢어진 자아에 편승해 장사를 하고., 나처럼. 그런데 꼭 패션으로 팔아먹지 않아도 빨리 닳으면, 나 같은 사람 먹고 살기 좋고. 아무렴 어때, 옷인데."

"맞아요." 진수가 맞장구를 쳤다. "전 아예 벌거벗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옷 없이 살 수 없어. 그런 짐승이야."

"아이덴티티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런가? 잘 몰라."

"저는 아이덴티티 없이도 살수 있는 세계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진수는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른 어조로 말을 꺼냈다. "참, 아저씨, 주식하지 마세요?"

"나도 뭐, 그래서 약간 손해보고 팔려는 거야. 그런데 넌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야?"

"뭐가요?"

"너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어딘가 좀 이상해. 그걸 듣는 나까지 이상해져. 지금 이런 말 할 상황이 아니잖아. 너 주식해서 돈 날렸구나? 그래서 깡통계좌 메우려고 돈 훔치는 거지? 아이데티티, 씨발 발음도 잘 안되네, 신분증이니 뭐니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고 결국 돈이 목적이지?"

"아니에요. 옛날아버지가 주식 하다가 망했거든요."

"옛날, 아버지가 아니고 옛날아버지? 자식교육 더어럽게도 시켜 놨다. 넌, 요즘 아버지와 옛날 아버지가 따로 있는 모양이지. 희한한 아들에 희한한 아버지다."

"둘째 아버지를 말하는 거예요."

진수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꽁초를 가지고 땅에 원을 그리다가, '父2'라고 쓴 뒤 이를 발로 지우고, 다시 '父, 父3'라고 썼다. 담배를 싸고 있던 종이가 터져 담배가루가 풀어헤쳐진다. 진수는 발로 문질러 글자를 지워 버린다.

"야, 너 쫓아다니느라고 담배를 굶었더니만.. 담배 한대씩 더 빨자." 일한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아이뎃티티, 씨발 대학 물먹어도 소용없다니까, 하여간 신분증은 왜 훔치는 거야?"

"아이덴티티요."

"나도 알아, 아이덴티티." 일한은 어조를 바꾸어 말을 이었다. "그게 원래 아이덴티티 카- 아드야, 임마. 그래야 우리말로 신분증이 되지, 그냥 아이덴티티라고 하면 양놈들이 신원이나 정체성으로 알아먹어요. 넌 도둑질이나 하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인데, 난 검정고시 쳐서 대학 물까지 먹은 사람이야, 임마. 졸업장이 시시해서 중간에 때려치우긴 했지만."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도 사실 대학생이에요."

"대학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럼, 이런 말은 나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나도 교수 할애비야." 일한의 말이 끝나자 전화기에서 갈매기 웃음소리가 났다.

"좋아, 학생이라고 치고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진수가 천천히 말했다. "첫째 아버지가 경찰이었지만, 전 중학교 때부터 물건을 훔쳤어요. 고1 때까지는 현금이 목적이었지만 이후로는 달라졌죠.

지갑을 훔치면 나머지는 돌려주고,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은 제가 가졌어요. 고1 때부터, 수험생처럼 야간학습을 시키는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돈 쓸 일도 없고, 용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거든요. 영석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진수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다시는 추적자를 볼 일이 없다고 여기고 진수가 말했다.

"그 친구한테 말하고 아저씨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영광이군."

"제 서랍 첫 칸에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이 수십 장 있었어요."

"서랍 둘째 칸에 있는 여고생 팬티 몇 장만 나한테 주라. 참고로, 난 토끼팬티를 좋아해. 여름에 빤스끈 보이는 걸 싫어하거든." 전화기에서 예의 그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한은 팬티 수십 장을 모아 놓고 포만감에 젖은 녀석을 상상했다. 말 상대할 놈이 아니다. 슬슬 구슬려 놈에게 가방을 돌려 받으면 그만이다. "그래, 행복했겠구나."

"아뇨." 진수가 잘라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덧붙였다. "그건 그때뿐이고, 점점 더 공허해졌어요."

"뜻밖인걸."

"제 담임 선생님 걸 훔친 적이 있었죠. 그 분은 제가 훔쳐 간 걸 아셨어요. 종례 시간에, 죽으면 아이덴티티도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두고 계시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몇 달 뒤에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런." 이번에는 일한이 진심으로 동조했다.

"그 분이 그랬어요. 죽으면 죽어서 아이덴티티가 필요 없지만, 살아서도 그것 없이 사는 세계가 있으니 우리더러 젊을 때에 꼭 찾으라고 했죠."

"그 세계는 토끼팬티만 입고 살았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자 일한은 전화를 하며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토끼팬티를 입고 버스를 타고, 토끼팬티를 입고 쇼핑을 하고, 토끼팬티를 입고 청바지를 찢고, 토끼팬티를 입고 놈에게 전화를 한다. "꿈속에서 전화하는 기분이군." 일한이 중얼거렸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꽤 고통스러웠어요."

"포경 수술했구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이었어요."

"성병 걸린 줄 모르고 포경 수술했구나?"

"농담 마세요." 잠시 뒤에 진수가 다시 말했다. "무슨 말을 할지 까먹었잖아요"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들어온 데까지 이야기했어."

일한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면 가방을 돌려주지, 그래?" 일한이 그렇게 말하면, 어디에 둘테니 가방을 찾아가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좀 생각해 보고요."

"뭐?"

일한은 순간 이유가 분명치 않은 막연한 배신감을 느꼈다. "너, 끝까지 돌려주지 않을 생각이지?"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날 심사하니?"

일한은 꿈에서 깨듯이 아까 화장실에서 수금가방이 없어질 때가 생각났다. "아까 화장실에서 소주 처먹은 걸 보고 알아봤어." 일한이 말했다. 한참 뒤에 진수가 말했다.

"아저씨는 말이 원래 거친 편이네요. 아저씨가 화장실에 들어와서도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거 기억나요?"

일한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진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동대문상가 화장실이었다. 아버지 제수를 사러 갔다가 제수 1호로 소주를 샀다.

첫째 아버지, 둘째 아버지, 셋째 아버지-친아버지인 첫째 아버지만 돌아가셨지만- 모두 제사를 지낼 작정이었다.

막상 소주를 사고 나자 생각처럼 기분이 흔쾌하지 않았다. 갑자기 미치도록 훔치고 싶어져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했다. 2년간 용케 잘 견뎠지 않은가. 깨진 거울속 진수는 세수를 하고 나자 제수로 산 소주를 마시고 싶어했다.

흠뻑 취해 한숨 자고 일어나면, 새로 부팅한 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우고, 조금 토했다. 변기 위에 죽은듯이 눈을 감고 있을 때에 옆 칸에 추적자가 들어왔다. 어떤 미친놈이 대낮부터 변소에서 소주를 처먹고 지랄이야.

화장실을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고, 그 말은 진수의 비위를 건드렸다. 심사가 뒤틀린 눈에 수금가방이 들어왔다.

시장 점포에서 탈의실 대신으로도 쓰는 화장실인데, 일한이 들어왔을 때는 옷을 사는 손님이 바지를 입어 보고 거울에 뒷모습을 비춰 보는 중이었다. 화장실에는 변소가 세 칸 있었는데 문들이 닫혀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다.

가운데 변소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소주 악취가 지독해서 물을 내리며 욕을 좀 한 것 같다. 한참용변을 보고 있는데, 빈 줄 알았던 변소 옆 칸에서 딸칵, 하고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설마 하고 칸막이 위를 보았을 때는 수금가방이 없어진 뒤였다.

"너 자꾸 쫀쫀하게, 욕 좀 한 것 가지고 그럴 거야?" 일한이 말했다.

"단지, 저는 상황을 설명하려던 것뿐이에요. 아저씨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진수는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니가 날 언제 봤다고 아저씨답기는 아저씨다워?"

"아저씨는 위악적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진수는 말을 잘못한 것 같다고 느꼈다.

"위악 같은 소리하네. 너, 말끝마다 징그럽게 아자씨, 아자씨 하면서 존댓말을 꼬박꼬박 해 가며. 예의바른 도둑은 도둑이 아닌 줄 알아?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알아. 친절하고,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에 온갖 이상한 생각들로 가득 찬 변태들이지. 불탄 시체 위에 앉아 하품하는 파리처럼 엽기적인 놈들이야."

"그 파리가 아저씨가 좋아하는 토끼팬티를 입었으면 좋겠네요. 끼힉 끼힉.." 진수가 기묘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제가 아니라고 말하진 않았잖아요. 아저씨는 위악적이지만 맑은 영혼을 가졌다는 걸 전 알 수 있죠."

"오줌이 맑은 걸 택하겠어."

"어-, 하지만 아저씨는 그그거, 거기까지가 전부인 줄 알고 있어요. 악의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 개인에게는 위선도 위악도 미미미, 미숙한 것에 불과하고," 진수가 말을 더듬으며 어눌하게 말했다. "제, 제대로 된 히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몰라요. 아저씨는 이 위선적인 세상에서 지지진실을 추구하다가 위악적으로 튄거죠.

농농농농농구공처럼. 어-, 하지만 아저씨가 그토록 싫어하는 위선적인 세계와 형태만 다를 뿐, 아안티세계의 다른 울타리 속에 아안, 안주하고 있어요. 무기력이죠. 분주한 무무.." 진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뱉어내기 위해 애쓸 때 일한이 말을 잘랐다.

"어유, 답답해. 아까부터 이 새끼가 왜 이래? 병신같이 말까지 더듬으면서, 들치기한 주제에 나한테 훈계까지 하는 거야? 다 좋은데, 그건 내가 내 친구한테 들어야 할 말이지 도둑놈한테 들어야 할 말이 아냐."

"그그런가요? 아저씨가 조금만 너너그럽다면 상관없지 않아요. 만약에 제가 아저씨한테 '세상 살다가 보면 도둑이 수금가방을 훔칠 때도 있고,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기운 내세요'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고고,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이 아저씨를 로로, 놀리는 게 되겠죠."

진수는, 일한이 자주 말을 끊어서, 아까 하다가 만 이야기가 생각났다.

"피핑계처럼 들리겠지만."

"핑계야."

진수가 일어나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었다.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맞아요. 피피, 핑계죠. 하하하,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그게 핑계라는 거야, 이 자식아. 니가 현실을 뭘 알아?"

"세금을 내는 일을 해야만 사삶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전 아저씨가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거거거지같은 학교지만 학교 안에도 사사사사, 삶이 있습니다. 중간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누누, 누구나 들지 않는 줄 아세요? 학교를 때때,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삶을 매매, 매번 서서선택했어요. 제도교육을 마치는 사람도 아저씨와 다른 방식으로 다른 걸 배울 뿐이지 배배, 배우고 서성장합니다." 진수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지만, 계속 말했다.

"당신이 학교 밖에서 두드려 맞을 때 미술시간에 파파파, 파란색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두두두두두들겨 맞는 학생도 있어요. 그 학생에겐 제도라는 끈이 당신과는 전연 으으, 의미가 다릅니다. 제도 바바밖에서만 얻을 수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어떤 걸 두두드려맞아가며 배웠다면, 당신은 어째서 학생도 제도 아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두두두두, 두들겨 맞으며 배웠다는 걸 모르죠? 당신은 학교를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당신이 학교를 다닐 다당당, 당시의 서서, 선택방식일 뿐이죠."

진수는 핸드폰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들며 걸어갔다. 자신이 더 심하게 말을 더듬을 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아까 하다가 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좋아요, 대학생이라고 치고, 아니 고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놓고 말하죠.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수수수, 수능시험 전날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학교시험과 모의고사 때 예옛날아버지가 유리창을 바바바바, 박살내곤 했어요. 어수선하고 전쟁터 같은 불안 속에서 공부를 했지요. 저한테 있는 도도, 도벽이 발동할 때는 세 번 중에 한번은 훔?, 훔쳐야 했고 나머지는 참았어요. 어-. 어어,어떻게 참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차참,참아야 했죠.

따따,딸딸,딸,딸딸이를 쳐가며 말예요."

"이 새끼가.." 일한이 욕을 할 때에 약간 더듬는 듯 하더니, 목소리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넌 한심한 청춘이야. 니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기나 했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으면 인생을 논하지 마라."

"여,여보세요. 듣고 있나요? 이이,이십일세기입니다. 아저씨는 으으,의무와 고고고,고독과, 끝까지 마맞서본 적이 있나요? 여보세요. 당신은 누눈물젖은 따딸,딸,딸딸이를 쳐 본 적이 있나요? 눈물젖은 따,딸딸이를 쳐본 적이 없으면 이이십일세기 처청춘을 논하지 마세요."

"보보, 보자보자 하니까 더는 못 들어주겠군. 씨씨씨발놈, 너 땜에 나까지 말을 더듬잖아." 일한은 진수가 어눌하게 말까지 더듬으며 말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리는 구석이 있다고 여겼고, 그래서인지 녀석을 몰아붙이던 조금 전과 달리 처지가 역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차리자. 일한은 호흡을 가다듬고 난 뒤 말했다.

" 네가 아무리 그래도 빵꾸 난 청춘, 아니 빵꾸 난 온실의 화초야."

"빠방, 빵꾸 난 온실의 화초라고요?" 말은 더듬지만 화난 목소리였다. "하하,함부로 규,규정하지 마세요."

"이 자식이, 끝까지 이기려 드네. 그래도 규정 당하니, 싫긴 싫은가 보지. 넌 부모핑계나 대고 하늘을 원망하며 평생 징징거리며 살 거야."

"아아,아저씨가 시,싫어졌어요. 이젠, 아저씨와 전 나나,남남이에요."

"이런, 돌아이 같은 놈. 그럼 언제는 내가 니 친구였어?" 일한이 말해도 응답이 없었다. "선생님이었어?" 그렇게 말해도 응답이 없었다.

한참만에 진수가 대꾸했다. "아저씨는 자신의 몸을 벌레가 먹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벌판에서 애꿎은 바람하고 싸움을 거는,"이라고 말했다. 진수는 마치 긴 터널을 빠져 나온 사람이 밖에서 내쉬는 첫 숨처럼 숨을 한번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겉만 싱싱한, 병든 잡초예요."

"이놈이 약을 처먹었나, 이젠 말도 안 더듬고.. 그래도 내 이름 기억해 둬, 임마. 이런 잡초 같은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는 거야."

"기껏해야 실패하면 술집에서, 성공하면 토크쇼에서 거들먹거릴 테죠."

"이 피도 안 마른 애송이 자식이.."

일한이 말하는 도중에 진수가 한결 여유를 찾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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