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중 역사적 북한 방문에 나섬으로써 '외교대통령'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의욕이 끝내 무산된 것은 시간과 여론이라는 2중장애물 때문이었다.백악관 관계자가 밝혔듯이 가장 큰 요인은 물론 임기말까지 3주밖에 남아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된 시일의 촉박함이었다.
통상 국가수반의 외국방문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3~4주전 정상회담의 의제가 확정되고 2주전까지 선발대가 현지에서 각종 보안점검을 마쳐야 한다. 따라서 클린턴이 내년 1월중 방북하기 위해서는 이미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이 평양을 다녀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으로는 의회와 언론 등 일반 여론이 방북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점도 클린턴의 방북 결단에 부담이 됐다.
공화당 중진들은 방북 추진을 취소하라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내 압박을 가했고 워싱턴포스트와 LA타임스 등 유력지들도 잇달아 후임자에게 대북 현안 결정권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또한 지난 19일 백악관을 찾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백지위임'한 점도 클린턴을 고민케 했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가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망신을 당할 게 뻔하고 그 책임은 클린턴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 부시의 말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클린턴은 냉전 구조해체의 중재자라는 의미있는 역할에 대한 개인적 욕망을 포기한 대신 실패해도 별 부담이 없는 중동평화협상에 매달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지난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전격적인 방미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답방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북미 관계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성안될 향후 6개월 가량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클린턴 방북 무산' 정부 "아쉽다"
정부는 29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임기 내 북한을 방문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하자 예견됐던 결과라는 반응 속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경우 북미 관계가 급진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북미 관계의 진전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더욱 공고히 하는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의 방북이 무산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 동안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행을 감행하기를 내심 기대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도 11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북한 최고지도자와의 회담이 북미 관계 진전의 관건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 본인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외교적 수사가 동원됐지만 사실상 평양행을 권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북미간 미사일 회담에서 결정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미국의 차기 대통령 확정이 늦어지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의지에 관계없이 방북이 어렵다는 쪽에 무게를 두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미국 정부도 고위 경로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무산 가능성과 함께 유감을 뜻을 우리 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임기 말 대통령의 방북 감행이 조지 부시 당선자와의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 차기 행정부와의 정책 조율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부담을 덜게 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정부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무산에 관계없이 향후 북미 관계는 이미 깔아 둔 궤도를 달리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기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깔아 둔 레일 자체를 뜯어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뒤 외교 진용이 갖춰지고 새 대북 정책이 입안될 때 까지 대북 관계 개선의 속도 조절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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