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올해 활약한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소련 붕괴 이후 추락하기만 했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되찾고, 혼란스러웠던 내정을 추스른 그의 뛰어난 외교와 통치 덕분에 러시아는 과거 10년과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대통령 취임 후 내정과 국제사회에서 보인 그의 행보는 확고한 리더십과 국익을 고려한 전략적 일관성을 견지한 것이었다.
'강한 러시아'를 내건 푸틴은 총리시절 체첸내전에서 얻은 지지를 기반으로 대통령 취임 직후 89개 공화국 및 주정부로 구성된 러시아를 7개 연방지구로 나누고, 지방수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폈다.
또 나라를 좌지우지하다시피 한 올리가르히(과두재벌)를 과감하게 공격, 국정을 단단히 장악해가고 있다.
쿠르스크호 침몰 사고로 한때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 시절부터 따져 권좌에 오른 지 1년이 되는 지금 일각에서 '국부(國父)'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러시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누리고 있다.
대외적으로 푸틴은 '핵 선제 공격권'을 천명하고,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견제하며 유럽ㆍ중국ㆍ인도와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등 과거의 미국 일변도 노선에서 탈피, 독자 노선을 펼쳤다.
오키나와(沖繩) 주요8개국(G8)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개발 중단 의사를 전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고,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동맹조약을 체결하는 등 과거의 우방들에 대한 영향력도 서서히 회복해가고 있다.
푸틴은 최근 러시아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국익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 이를 추구해 나갈 것"이라며 냉전 시대의 팽창주의나 보리스 옐친 시대의 대 서방 유착을 모두 거부한다고 자신의 외교노선을 명확히 했다.
내년 2월께로 예정된 한국 방문도 이런 국익 외교의 일환이다. 푸틴은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미국과 러시아는 더 이상 소련 시절처럼 라이벌도 적도 아니다"라며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푸틴은 소련 국가(國歌)를 복원하고, 언론을 무시하는 등 국수주의ㆍ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로 비판도 받고 있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음모적이고 야심에 찬 '짜르의 후계자'로 그려진 이미지는 아직 남아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여러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더딘 경제가 가장 큰 난제로 남아 있다. 경제 침체를 해결하지 않는 한 푸틴의 '강한 러시아'호와 그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릴 수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무기로 푸틴은 올 한해 동안 세계인들이 잊고 있던 러시아의 잠재력을 다시 일깨웠으며, 러시아의 국가 지도자로서 확고한 인상을 심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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