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선수중 송진우(34ㆍ한화)만큼 세인의 관심을 끈 인물도 없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 회장이라는 큼지막한 감투를 쓴 탓이다. 8개구단 사장단으로부터 기피인물 1호로 지목됐지만 팬들로부터는 믿음직한 선수로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선수협의 태동초기만 해도 송진우의 존재는 부각되지 않았다. 선수협 결성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을 때 아웃사이더였기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자유계약선수(FA)제를 개악하는 바람에 선수들 사이에서 권익단체를 만들자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11월6일께 였다.
한ㆍ일 슈퍼게임에 출전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결사체를 구성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구체화된 것은 99년 12월15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끝난 후였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8개구단 선수들은 이후 구단별로 모임을 갖고 선수협을 구성키로 의견을 모았다.
올해 1월2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모인 8개구단 선수들은 우여곡절끝에 총회를 강행, 송진우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선수협을 출범시켰다. 주축멤버가 아니었던 송진우가 전면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아무도 송진우의 회장선출을 예상하지 못했다.
구단대표들중 제일 고참이었던 데다가 리더로서 적격이라는 후배들의 적극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이때부터 송진우의 야구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3월10일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5개항의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선수협 파동은 미풍으로 끝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지난 18일 8개구단 대표(주장)로 선수협 집행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구단측의 주장에 맞서 선수협은 총회를 열고 송진우를 2기회장으로 재선임했다. 참여멤버는 고작 29명. 17일 심야까지 회장직을 고수하던 송진우는 이번에도 후배들의 강권에 못이겨 선수협의 우두머리가 됐다.
선수협주축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하면서 촉발된 구단과 선수협의 힘겨루기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선수들의 운명을 책임진 송진우는 버거운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며 요즘도 밤낮없이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정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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