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시드니올림픽 마라톤에서 이봉주(30)와 같이 넘어졌던 외국선수는 누구였을까. 자신의 기록에 10여분 뒤진 2시간 17분57초, 24위의 참담한 성적에 대한 치졸한 변명이 아니냐는 의심이 한동안 일었다.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대한육상경기연맹과 소속팀 삼성전자의 추적 끝에 최근에야 밝혀졌다. TV 화면에 잡히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았던 문제의 선수는 바로 케네스 체류이요트. 마라톤 강국 케냐 대표로 4월 로테르담 마라톤 우승자다.
놀라운 것은 체류이요트는 선두권을 달리다 19.2㎞지점에서 이봉주와 함께 넘어진 뒤 20㎞지점서 62등으로 처져 반환점에 해당하는 센트럴 파크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오른손과 엉덩이에 상처가 생기는 타박상과 심적 고통으로 37위까지 밀렸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봉주의 집념과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나 다름없다.
레이스 전날까지도 "금메달 말고는 생각하는 것이 없다"고 자신했던 이봉주에게 마음의 상처는 더욱 컸을 것이다.
경기직후 '은퇴를 생각하느냐'고 가슴 아픈 질문을 했다. 그는 40세 가까이 되도록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명성을 쌓고 있는 스티브 모네게티(38ㆍ호주)를 이야기했다. 달릴 수 있는 한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올림픽이 끝난지 두 달만인 12월3일 이봉주는 후쿠오카 마라톤 출전을 강행했다. 재기를 위해 스스로 원했다지만 3개월로 잡는 회복기간을 고려하면 무리한 출장.
시드니올림픽 우승자인 에티오피아 아베라를 목표로 삼은 이 대회서 이봉주는 29㎞지점부터 선두권에서 처지기 시작했다.
선두와 50여초차. 추락이 재연되는 듯 했다. 종반 레이스는 일본의 신예 후지카 아쓰시와 아베라의 대결로 좁혀지는 듯 했지만 35㎞이후 이봉주는 케냐의 거트 타이스, 아베라, 프랑스의 베하르마저 제치며 2위로 골인, 또 한번 국민적인 감동을 자아냈다.
종반 5㎞ 레이스에서 불꽃 같은 투지를 보일 수 있는 선수는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반이후 후지타의 흔들기에 말려들지 않았다면 또 한번 한국마라톤사의 신기원이 이뤄졌을 지 모른다는 아쉬움 속에 그는 또 한 번의 재기에 성공했다.
24차례 완주 레이스동안 숱한 부상과 '마라톤 천재' 황영조의 그늘을 떨쳤고 코오롱 파문마저 딛고 일어선 그다.
쓰러질 듯 하면서도 반드시 일어선 그는 올해도 오뚝이 인생을 재연했다. 하지만 '근성의 마라토너'도 이제 마라톤 인생의 종반레이스를 준비해야 하고 한국마라톤도 '제2의 이봉주'를 키워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시점이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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