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녀석의 새끼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마치 갓난아이의 귀여운 발짓처럼 조그맣게.. 그러나 위대하게." "24일 녀석이 입을 열었다.54일만이다. 함박눈보다 내겐 녀석의 정겨운 목소리가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간병일기 중에서)
이제 갓 스무살 동갑내기 두 고교 동창생의 눈물겨운 '병상의 우정'이 세밑의 잔잔한 화제로 번지고 있다. 설동민(20ㆍ한국교원대 영어교육2)씨와 이승훈(20ㆍ성균관대 법대2)씨가 그들.
이씨가 지난 10월 말 수업 도중 갑자기 쓰러져 서울대 병원 병상에 누운 게 28일로 벌써 58일 째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져 산소호흡기까지 쓰고난 뒤에야 나온 진단명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길랑-바레 증후군'.
의사의 설명은 더욱 기가 막혔다. 몸 안의 항체가 말초신경을 파괴해 온 몸이 마비되는 희귀병으로 치료에 최소 3년이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자칫 폐와 심장까지 마비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어 완쾌 여부는 장담키 어렵다는 말이 덧붙여 졌다.
더구나 남편의 사업실패 후 빚더미를 피해 이혼, 홀로 된 어머니(이밀란.43ㆍ경남 울산시 효문동)가 공장에 다니며 받는 월급으로는 엄청난 치료비나 간병비를 감당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절망하던 승훈씨에게 돌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 사람이 동민씨였다.
두 사람은 울산고에서 전교 1, 2위를 다투던 '라이벌'. 군 입대를 위해 휴학 중이던 동민씨는 승훈씨의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상경했다.
"친구가 죽어간다는 생각에 예전 성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며 쌓였던 앙금도 다 사라졌습니다. 살아만 달라고, 제발 살아만 달라고 수없이 되뇌였습니다."
졸업 후 처음 만난 둘은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동민씨는 이후 아예 군 입대마저 미룬 채 병실에서 숙식하며 친구의 손발이 되었다.
승훈씨 간병은 다른 환자들과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힘든 일. 대.소변은 물론,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탓에 매 5분마다 흘러내리는 침까지 일일이 받아줘야 하고, 승훈씨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할 때는 목에 뚫은 호흡 구멍을 막아줘야 한다.
고교땐 1.2등 다투던 라이벌… 李군 어머니는 직장 그만둔채 '망연'
매일 밤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 하던 동민씨는 지난 17일 인터넷에 '너만을 위한 친구(www.79foryou.wo.to)'라는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동안 써온 간병일기를 올리고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호소한 것.
반응은 곧 나타났다. "승훈씨 때문에 목발을 풉니다. 간병일기가 회복일기가 되길.(이현우)", "하늘이 준 시련이 병이라면, 하늘이 준 복은 멋진 친구(Blue Tone No.4)" 등 이들을 위로하는 200여건의 글과, 아직은 작지만 소중한 성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날 오후 승훈씨 어머니는 치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위해 아들을 고향 울산의 병원으로 옮겼다.
이날도 영하를 넘나드는 추운 날씨였지만, 서로의 얼굴에서 한 순간도 떨어질 줄 모르는 두 친구의 눈빛은 한없이 따스해 보였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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