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2월29일 영국의 여성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64세로 죽었다. 찬란한 별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영문학사의 휘황한 성좌 안에서 로제티라는 이름은 희미한 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그의 '노래'는 영문학사에 기록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마세요/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사이프레스도 심지 마세요/ 내 위에 초록색 풀이 덮이게 하여/ 비와 이슬방울에 젖게 하세요/ 그리고 원하신다면 나를 생각해 주세요/ 아니, 잊으시려면 잊어주세요"
런던에서 태어난 로제티의 시세계는 두 살 터울의 오빠 개브리얼 로제티가 주도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의 자장(磁場) 안에서 정교한 운율법과 온아(溫雅)한 정감으로 중세풍의 신비적ㆍ종교적 분위기를 빚고 있다.
라파엘 전파는 1848년 개브리얼 로제티, 윌리엄 헌트, 존 에버릿 밀레이 등의 화가들이 만든 결사(結社)의 이름인데, 이 모임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일어난 미술과 문학 분야의 운동을 뜻하기도 한다.
라파엘 전파는 당시 영국의 예술이 라파엘로 이후의 대가(大家)양식을 모방한 맥빠진 예술이라고 진단하고,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 자연주의와 정신성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문학의 가장 오래된 주제에 처절한 아름다움의 옷을 입힌 '노래'의 2연은 이렇다.
"나는 그늘진 그림자 따위는 보지 않겠고/ 내리는 비도 느끼지 않겠지요/ 나이팅게일 소리도 듣지 않으리니/ 슬픔에 잠긴 소리이기에 그래요/ 나는 해가 뜨거나 지는 일 없는/ 어스름 속에서 꿈꾸며 누워/ 당신을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아니 어쩌면 잊을지도 모르지요"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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