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대중에게 줄거움과 괴로움을 준 이들을 뽑아, 칭찬이나 욕을 하는 이벤트가 많다. 방송은 서민들이 일상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 인기 드라마 주인공들에게 상을 준다.또 시민단체는 정부와 지도계층의 실정(失政)과 꼴불견 '10選'등을 발표, 열 받는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런 성격 다른 이벤트의 공통점은 한때 웃고 즐기는 일과성(一過性)이다. 그래서 이걸 모두 절박한 현실을 호도(糊塗)하는 마취제로 보는 학자도 있다.
▦ 각박한 세태에 그나마 순수한 감동을 주는 불우이웃돕기 미담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선진사회 일수록 자선과 기부가 일반화했다고 떠들지만, 훨씬 큰 몫을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떠 맡는 것을 무시한 헛소리라는 지적도 있다.
'거지에게 동냥을 주는 것이 옳으냐'는 고전적 논란과는 다른 차원이다. 미담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사회복지 제도가 미흡한 탓이고,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복지비용을 적게 부담하는 천민자본주의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 어머니의 암 치료비 197만원을 도둑맞은 소녀에게 대통령이 금일봉과 위로 편지를 보냈다. 소녀 오빠의 중학생 급우들이 성금을 모은 것은 분명 미담이다.
그러나 단칸 셋방 암 환자가 무료치료 받는 제도는 마련하지 못한 채, 고작 '용기를 갖고 살면, 좋은날이 올것'이라고 위로한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어렵다지만 중진국을 오래전 넘어선 나라에서, 대통령이 기껏 도둑맞은 성금을 메워 주는 것은 미담아닌 처량한 얘기다.
▦ 지난 한해 경쟁논리에 철저한 경제구조 개혁을 못해 위기를 맞았고, 그래서 새해 개혁에 매진해야만 나라가 사는 길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의 궁극 목표는 국민 개개인의 복지 향상이어야 한다. 체제와 이념을 떠나, 국가와 사회의 부조(扶造) 책임을 저버린 개혁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은 봉건왕조 시대에도 무책임한 논리였다. 가난은 나라가 구제하는 것이 진정한 선진경제 모델이다. 경제 전문가들에게 대통령의 성금은 '올해 최악의 미담'이 아닌가 묻고 싶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