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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단기'와 '장기'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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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단기'와 '장기'의 충돌

입력
2000.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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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 같으면 곶감을 초콜릿으로 바꾸어야 더 실감이 날 속언이다.비슷한 메시지를 주는 속담으로 '좋은 약이 입에 쓰지만 몸에는 좋다'가 있다. 당장 좋은 것이 나중에는 나쁘기 쉽고 당장에 좋지 않은 것이 나중에는 좋게 마련이라는 새옹지마의 이치를 두 속담은 가르쳐 준다.

경제정책에 새옹지마의 이치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단기적 시각에서 보면 최적인 정책이 장기에는 결코 최적이 아니다. 이를 경제학에서 '최적정책의 시간 비일관성'이라 부른다.

상황논리를 벗어나 원칙 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단기에는 최적이 아닌 것 같이 보이지만 장기에는 최적이라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 경제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고들 한다. 이런 예측에 뒤이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경기부양을 주문하는 소리가 슬슬 흘러 나오고 있다. 이는 경제이론도 모르고 역사적 경험도 무시하는 무책임한 소리이다.

4대 부문의 개혁으로 흔히 대표되는 구조조정은 단기에 못가진 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경기침체국면에 이 고통은 더욱 커진다. 이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중환자논리'에 입각한 경기부양이다. 중환자가 큰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 만사휴의니까 먼저 체력을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그럴듯한 논리에 입각해 1998년 9월부터 경기부양에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결과는 오늘날의 지지부진한 구조조정과 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민간연구소의 주문은 최근 역사의 경험과 과오를 되풀이 하자는 소리다.

혹자는 초콜릿도 먹고 쓴 약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실상 DJ가 이런 병행론의 챔피언이다. 구조조정을 외치면서도 곧 윗목까지 따뜻해질 것이라고 장담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동시추진하면 구조조정이 뒷전으로 밀쳐진다.

경기부양을 추진하는데 부양이 안되면 고강도의 부양처방을 계속 쓰지 않을 수 없게끔 내몰린다. 부양이 되면 부실부문이 기가 살아나 구조조정을 거역한다. 이래 저래 구조조정은 찬밥이 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시간이 걸리고 진행기간 중 근로자와 못가진 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는 고약한 작업이다. 이런 희생 끝에 오랜 기간이 지나야 혜택이 골고루 돌아간다.

최근에 여러 연구기관들이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더 높은 성장을 누릴 수 있다고 합창하는 것도 구조조정의 고약한 특성을 간과하는 안이한 예측이다.

구조조정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없애 주식시장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만 '수술 후에 정규 식사를 못하는 효과'가 더 크기 마련이다.

처절한 생존경쟁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5% 미만의 기업이 살아 남는 것이 벤처산업이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을 창출하고 고용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 하에 집권 기간 중 2만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단기에 벤처강국을 만들겠다는 정부의욕이 코스닥의 광풍과 붕괴를 몰고 왔다. 경제에 관한한 단기에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훨씬 나쁜 것을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현정부 출범 이후 다섯 차례나 시행되는 농가부채경감대책도 단기에는 불가피한 논리가 있지만 장기에는 비효율적인 대증요법이다.

부양하고 육성하고 지원하러 드는 것이 대중영합적인 정권의 단골메뉴이다. 이것이 단기에는 그럴듯한 효과를 내는 것 같지만 장기에는 경제를 우그러뜨린다.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와 비효율, 반(反)시장과 관치의 온상이 된다.

단기와 장기의 충돌은 비단 경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적정책의 시간 비일관성을 감내하는 용기가 없이는 국정쇄신을 위한 어떤 노력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안국신ㆍ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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