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정치도 저물어 간다. 새 천년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자던 정초의 그 화사한 다짐은 다 어디로 갔는지, 세밑의 정치 풍경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보이는 것은 힘 다 빠진 여당과 우격다짐이 늘어난 야당의 모습뿐이다.■여야의 마지막 합작품인 새해 예산안은 회계 개시일 엿새를 앞두고 26일 아슬아슬하게 처리됐다. 예산안의 국회 통과 시점이 헌정사상 가장 늦은 기록이라는 데, 하필이면 새 천년의 첫 해, 그것도 경제가 다급한 시점에 왜 그런 기록을 만들어 내는 지 정치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여당의 느슨함과 야당의 우격다짐 산물이다.
■여당은 요사이 느슨함이 지나쳐 흐물흐물하다. 도대체 위계질서가 있는 정당인지 아닌지 분간 안 갈 정도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대표 지명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장관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신임대표를 향해 '기회주의자'운운하며 말 펀치를 날린 것이다. 이런 발언이 장관의 품위에 적합한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여당을 '제대로 된 집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 싶다.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다 사라진 정계 개편론도 여당이 얼마나 흐물흐물한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천기가 누설되면 될 것도 안 된다는데, 합당이나 신당창당 등을 통한 여대(與大)구축론은 이제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인위적 정계개편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야당도 제대로 된 집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깨에 힘 들어간 사람이 너무 많아 탈이다.
그래선지 요즈음 우격다짐이 부쩍 늘었다. 민주주의에서는 반대 할 수 있는 힘, 그것도 권력이다. 그 '반대 권력'을 야당은 그런대로 갖고 있다. 과거에는 여당에 무한책임이, 야당에 무한 공격권이 있었다. 오늘의 야당은 다르다.
원내 제1당에 걸맞게 책임도 공유해야 한다. 여나 야나 어떤 것이든 지나치면 저항을 받는 다는 것, 이런 세밑의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종구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