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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년 실업이 문제다/ (2)불운한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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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년 실업이 문제다/ (2)불운한 20대

입력
200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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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은 커녕 입사 원서를 내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부모님 생각을 하면 어디라도 들어가야 하는데.."IMF에 이어 또다시 닥친 취업대란에 90년대 초반 학번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 어떤 세대보다 취업 준비에 열심이었던 이들은 굳게 닫혀버린 취업문 앞에서 그저 망연자실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 전국 214개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졸업예정자는 모두 21만4,000여명. 이 가운데 대학원 진학자 등을 뺀 18만여명이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 여기에다 취업 재수ㆍ삼수생 등이 17만여명으로 취업 대기자는 35만명가량.

그러나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턱없이 모자란 상태다. 취업 전문 정보지 월간 리크루트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 말 신규 정규직 일자리는 모두 8만여개 수준. 내년 상반기 기업체 채용 규모도 현재로서는 미미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심각한 것은 IMF 취업난을 이미 겪었던 남자 91~92학번, 여자 94~95번들에게는 올해 또는 내년이 취업의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이다. 취업 연령 제한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올해 못 들어가면 영원히 끝'인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있다. 조만간 '멀쩡한 청년 실업자'가 쏟아져 나올 판이다.

내년 2월 K대 건축학과를 졸업하는 김모(26)씨는 "건설업체 불황이 특히 심해서인지 한두 사람이 인턴으로 입사했을 뿐 나머지 과 친구들이 무더기로 실업자가 될 처지"라며 "뒤늦게 컴퓨터쪽 공부를 시작하거나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씁쓸해 했다.

98년 2월 H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강모(28)씨는 이보다 더 딱하다. IMF 취업난 속에서 B의류업체 영업사원으로 간신히 들어갔지만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던 강씨는 올 상반기 경기가 호전되면서 기업체들이 신입사원을 대폭 뽑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회사를 나왔다.

그러나 강씨가 만난 것은 IMF 때보다 더 심한 취업난. 대부분의 기업체 신입사원 연령 제한선이 28세. 경력사원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강씨로선 이제 정상적인 기업체 입사는 불가능한 셈이다. "어떻게 이렇게 지지리 복도 없습니까." 강씨에게 남은 것은 어이없는 웃음밖에 없었다.

월간 리크루트 오세인 편집장은 "올 상반기 반짝 숨통이 트인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98년부터 시작된 취업난이 올해 말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말 그대로 '취업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입사원서를 50여 군데나 냈는데 다 떨어졌어요", "대기업체 면접은 꿈도 못 꾸죠", "우리가 뭘 잘못 했길래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IMF에 이어 거듭 취업난을 겪고 있는 '불운한 세대'들의 아우성이다. 이들은 대학 입학 후 수년 동안 '취업난'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왔고, 이제는 극도의 상실감에 빠져 있다. 적성이나 희망을 들먹이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그저 일자리를 구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 목표다.

▲ 명문대도 예외 아니다.

"취직 걱정은 없다"던 이른바 명문대 출신도 취업난을 피할 수 없다.

내년 2월 연세대 인문대를 졸업하는 주모(26)씨. 토익 910점, 학점 3.4(4.0 만점) 등의 실력을 갖고도 30여 군데의 기업체에 지원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동기 졸업생 10명 중 취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대학 사회대 94학번 홍모(26)씨. 토익 950점에 학점은 과 수석 수준. 그렇지만 사정은 주씨와 다르지 않다.

원했던 몇몇 대기업체에 불합격한 뒤 한 보험 회사 영업직을 간신히 얻었다. 동기 졸업생 25명 중 취직한 사람은 홍씨를 포함해 5명 뿐이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심모(23)씨는 "졸업생 대부분이 취업난을 피해 입대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을 살려 취직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취업정보실의 신현호씨는 "졸업 예정자 취업 현황을 정리 중인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부진하다"고 말했다. 올 9월 취업 박람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30개 업체들이 참여했지만 11월 이후로는 박람회고 취업 설명회고 아예 없었다고 한다.

▲ 경력자 우선도 취업난 부채질

대학 졸업자에겐 경력자 위주 채용도 취업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월간 리크루트 오세인 편집장은 "벤처업체들의 경우 인력 교육에 투자할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한다"며 "사람은 넘치지만 딱히 채용할 만한 인력이 없다는 하소연도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교육부가 실시한 '기업체 대학교육만족도 조사'에서도 상당수 기업들이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김농주 취업담당관은 "인문계와 기초 과학 계열의 학생들의 취업난이 특히 심하고, IT분야나 외국계 기업도 경력 사원을 선호하는 실정"이라며 "획기적인 고용의 뉴딜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아무데나 간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어디든 붙고 보자"는 하향 취업 현상도 뚜렷하다. 월 50만원 수준의 3개월 계약직인 정부 지원 인턴 사원 모집에 신청한 A대 교통공학과의 류모(26)씨는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D대 전산통계학과 출신의 김모(22)씨는 "정보검색사 2급 등 두 세개의 자격증이 있지만 대기업체에는 면접 조차 못 봤다"며 "눈높이를 최대한 낮출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최근 노동부 고용안정정보망인 Work-Net에 접수된 구직 현황에 따르면 올 3/4분기 대졸 취업자 중 31%가 단순 노무직에 취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직 25.6%, 준전문직 19.9%, 전문직 14.8%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 고시가 탈출구?

취업문이 닫히자 각종 국가 고시에 매달리는 대졸자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94학번 양모(26)씨는 "동기 중 취직한 사람은 1명 뿐이고 나머지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거의 대다수가 사법ㆍ행정 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시 학원이 밀집한 서울 노량진 지역은 전국 각지에서 무려 3만여명이 몰려 들어 있다. 이 지역 고시학원의 한 관계자는 "'9급은 고졸, 7급은 대졸'이라는 말은 옛말"이라며 "9급 공무원 시험도 평균 100대 1의 경쟁률로 대졸 학력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 이어지는 취업난

올 상반기 잠깐 숨통인 트인 것을 제외하면 취업난은 사실상 98년 이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60~70% 수준이었던 대졸자 취업률은 IMF 이후 5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올 하반기 대기업체 채용 규모는 지난 해와 비슷한 1만명 가량에 그쳤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IMF 취업난을 피해 자격증 준비, 어학 연수 등으로 취업을 미뤘던 대졸자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98년 H대를 졸업한 김모(28)씨는 취업이 힘들자 공무원 시험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결국 올해 행정자치부 9급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기업체 입사 연령이 28세인 까닭에 궁지에 몰린 김씨는 "9급 공무원 나이 제한이 28세에서 3년 늘어난다고 하니 거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 뿐"이라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이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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