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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아름다운 사람'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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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아름다운 사람' 찾기

입력
200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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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봉(杜峰) 주교는 지난 10년 넘게 행주산성에 산다. 안동교구장에서 은퇴한 것이 1990년의 일이다. 단구(短軀)에 척신(脊身)은 그대로지만 얼굴빛은 더 맑고 붉어진 듯 보인다.찾아 오는 사람 만나거나 불러 주는 사람들 찾아가 이야기하는 이 분의 요즘 화두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 사랑에 눈을 뜬 사람들에 관한 예화(例話)를 줄줄이 들려주면서 활짝 활짝 웃는다.

그 주인공들 가운데는 이웃에 사는 어느 젊은 부부도 있고, 잡지에서 읽은 생활수기의 필자도 있다. 또 유명 성우인 '배한성'씨가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책 이름이 숫제 '아름다운 사람'인 월간지 하나를 들어보이는 때도 있다. 프랑스 사람 티가 전혀 없는 우리말로 그는 "나는 이걸 봅니다"하고 말한다.

40쪽 남짓한, 아주 얄팍한 간행물이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작은 이야기들만을 모아내는 비슷한 포켓형 월간지들 중 하나일 듯 싶다. 갈수록 인간의 얼굴을 잃어가는 사회와 시대에서, 그리움이며 사랑이며 아름다움 같은 사람냄새 나는 언어를 되살려 주려는, 그런 소임을 하는 책이다.

2000년이 크게 저무는 이 나라의 세밑은 지금 지나간 1,000년 또는 수천년의 쓸쓸함을 한데 모은 듯이 삭막하다. 춥다. 3년 전 환난이 처음 닥쳤을 때보다 더 춥다고 느끼는 것은 직장문을 닫고 농성장으로 몰려간 은행원들 때문은 아니다.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져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런 절망감 때문도 아니다.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사람의 모습, 오로지 경제적 관점만이 압도하는 가운데 실종되어 버린 인간적 관점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인 지금 당면한 문제의 본질이다.

2000년을 시작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나간 2,000년 간의 역사를 돌이켜 반성하는 대모험을 시도했다. 지난 3월에 나온 '기억과 화해'라는 이름의 '전인류를 향한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처절할 만큼 교회사의 치부를 드러낸 참회와, 용서를 청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먼저 한국 개신교 협의체인 KNCC가 '21세기 한국기독교 신학선언'을 11월에 발표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12월 '쇄신과 화해'라는 제목으로 200년 역사의 잘못된 과거를 털어놓고 용서를 청했다.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이만한 역사와의 화해 시도는 전례없는 일이고 그만큼 용감한 일이다. 옛 일을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쇄신'의 뜻이라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열어 앞으로 나아가는 의식이다.

지난 일을 반성하고, 그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청하여, 그를 통해 쇄신을 다짐하는 '화해의 여정'은 정부나 국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슴을 치는 '내 탓' 고백이 필요하다. 교황청의 '기억과 화해'가 발표되던 날의 로마 바실리카성당의 미사에서 베르나딘 간틴 추기경은 "우리가 이 일을 진정으로 슬퍼할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한다. '형식'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염원의 뜻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양민학살의 문제, 베트남전쟁에서의 비슷한 문제들, 군부독재정권하의 의문사 사건들(이 문제는 지금 해결을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지만), 한가지 덧붙여서 박정희기념관 건립 지원이 온당한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가도 '화해의 여정'에 동참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두봉 주교는 2000년을 뜻있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자고, '크게 한번 눈을 뜨자'고 호소한다. 그는 또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의 결어인 '그래도 우리는 곱게 만들어야 해!'를 새해를 향한 희망의 화두로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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