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IMF 위기 3년만에 다시 붕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경제는 10%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900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하며 놀랍게 회복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은 경제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을 통해서 얻은 근원적인 회복이 아니다.110조원의 공적자금 투입과 1000억 달러가 넘는 단기 외국자본유입에 따른 일시적 거품 회복이다. 4ㆍ13 총선 이후 증권시장 폭락을 시발로 거품이 무너지면서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후 경제는 방향을 잃은 난파선처럼 침몰하면서 실업자들을 토해내며 비틀거리게 되었다.
빈부격차.대외예속 심화
문제는 그동안 경제가 구조적 불균형과 대외 예속이 심화된 것이다. 우선 국민 1인당 250만원이 넘었던 공적자금 투입은 부유층의 부로 집중되어 빈부격차를 악화시켰다. 상위 10% 부유층 금융소득이 하위 10% 저소득층 금융소득의 21배나 된다.
서민들의 생존이 불안해도 부유층의 부는 계속 쌓인다. 반면 600억달러에 이르는 증시자금과 400억달러가 넘는 단기외채는 경제의 숨통을 잡고 있다. 증권시장을 좌지우지하며 투자이익을 챙기고 삼성전자, 국민은행 등 우리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의 지분을 절반 이상 확보했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은 자금시장 마비로 다시 줄줄이 부도위기를 맞고 근로자들은 대책없이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경제를 쓰러뜨리지 않기 위해 공적자금을 끝도 없이 퍼부어야 하는 덫에 걸렸다.
경제가 이렇게 된 원인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제공자들에 대한 단죄가 없이 공적자금만 땜질식으로 퍼부었기 때문이다.
우선 부실 기업주에 대한 처벌이 유명무실하다. 기업이 부도에 입박하면 기업주나 채무관계자들은 개인 재산을 가족에게 가등기하거나 증여하는 수법으로 재산을 빼돌린다.
또 유령회사나 제3자를 통해 재산을 해외도피시킨다. 심지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공금을 횡령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 관련자들이나 정부당국자들은 채권보전 조치조차 취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이들은 경제를 망쳐놓고 국민들을 난국에 빠뜨려도 치외법권을 누리며 호화생활을 한다.
대우 김우중 전 회장, 새한 이재관 전 회장, 해태 박건배 전 회장 등 사회적 지탄을 받는 기업인들이 많다.
회사 망하고도 호화생활
정부는 그동안 국민의 부담인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이상 부실 기업주의 책임을 철저히 묻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 끝나고 있다.
정부는 경제개혁의 완수를 위해 부실기업의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하며 검찰에 주요 부실기업의 경영진 명단까지 넘겼다. 또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예금보험공사에 부실기업 및 기업주에 대한 조사권을 주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모두 용두사미일 뿐이다.
한편 IMF 위기를 초래하고 경제를 공적자금을 먹는 블랙홀로 만든 정책당국자와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책임 추궁도 없다. 한빛은행, 평화은행 등 6개 부실은행에 8조3,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허공에 날린 후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100% 소각하면서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내년 2월까지 모든 구조조정을 마친다는 무책임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계속 공적자금을 내놓으라고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어떻게 외국자본에 맹목적인 저자세를 취하며 증권시장을 국제투기장으로 전락시키고 금융기관과 기업을 헐값에 매각하는 조치를 강요할 수 있는가?
정책당국자도 책임 물어야
국민의 불신과 좌절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앞으로 진정한 구조개혁을 위해 국민의 희생이 불가피함을 감안할 때 부실기업주와 정책관련자들에 대한 확실한 단죄가 전제조건으로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위해 즉각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책임규명과 처벌에 나서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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