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 서비스'에 불과했던 파업 대책이 엄청난 고객 혼란을 불렀다. 국민ㆍ주택은행 노조 파업이 영업일 기준으로 3일째를 맞은 26일. 두 은행 100여개 '거점 점포'는 하루종일 북새통처럼 몰려든 고객들로 몸살을 앓았고, 정부와 은행측이 배포한 안내전화는 통화중 신호음만 내며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수표 및 어음 교환, 인터넷뱅킹, 현금서비스 등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 연말 급전이 필요한 고객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특히 한빛 등 3개 은행을 통해 예금대지급을 해주겠다던 정부 대책도 전산시스템 미비로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금융대란 현실로 서울 명동 국민은행 본점 1층 영업부. 전날 정부와 은행측이 '거점 점포'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탓에 26일 오전9시께부터 고객들이 속속 몰려들었지만 영업시간이 지난 오전9시30분 이후에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300여명의 고객들은 추위에 떨며 은행 주위에서 기다렸지만 은행측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자 욕설을 퍼붓고 셔터를 발로 차는 등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김포에 사는 주부 홍선희씨는 "생활비도 떨어지고 미국 유학중인 딸에게 학자금도 부쳐야 하는데 깜깜하다"며 "오전8시께 본점과 통화했을 때는 영업을 한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왔는데 2시간씩 아무 해명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까스로 영업을 재개한 점포도 몰려드는 고객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서울 삼성동 국민은행 선릉역지점은 대기순번이 600번을 넘나들어 고객들이 최소 2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가까스로 순번이 돼서도 "인력이 모자라 입ㆍ출금 등 기본 업무 외에는 처리할 수 없다"는 직원의 답변에 거세게 항의하는 고객들도 눈에 띄었다. 주택은행 남대문지점도 10여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몰려든 수백명의 고객 업무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 직원은 "고객이 너무 많이 몰려 전화받을 시간도 없다"며 "대출상담이나 환전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은행이 마련한 콜센터 등 안내 전화도 제기능을 다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택은행(1588- 9999)과 국민은행(1588-1616)은 콜센터에 수백명의 상담원을 동원했지만 상담원과 연결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안일한 대책이 화 불렀다 두 은행 노조원은 물론, 계약직까지 파업에 동참하는 상황에서 연휴가 끝나는 26일 고객들의 혼잡은 이미 충분히 예상됐다. 정부와 은행측도 이에 대비해 전날인 25일 3개 예금 대지급 은행 운영, 거점 점포 운영 등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책의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 우선 한빛ㆍ기업ㆍ신한은행을 통한 예금 대지급은 현재로서는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측은 당초 이르면 이날 오후부터 예금 대지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전산프로그램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전산부 관계자는 "예금 대지급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는 적어도 3~4일은 소요될 것"이라며 "이마저도 국민과 주택은행 전산부 요원이 부족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측은 수작업을 통해 예금 대지급을 하는 것도 검토중이지만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우려돼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거점 점포 운영 및 콜센터 운영 등에도 혼선이 빚어졌다. 두 은행측은 전날 운영가능한 최대 점포를 발표함으로써 실제 명단에 포함됐던 점포 상당수가 영업을 하지 못해 고객들이 커다란 불편을 겪었다.
시중은행은 한 관계자는 "정부와 은행측이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보고 대책을 마련한 것 같다"며 "립 서비스 대책이 오히려 고객들의 혼란만 더욱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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