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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베트남 국경분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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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베트남 국경분쟁 해결

입력
200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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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중국이 양국간 최대 분쟁지역인 통킹(중국명 베이부ㆍ北部)만에 대한 영해 획정에 합의했다.중국을 국빈 방문중인 천득렁 베트남 대통령은 25일 베이징(北京)에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통킹만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 대륙붕 획정 및 어업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지난해 12월 육상 국경선 획정에 합의한 양국은 이로써 수 천년 동안 분쟁의 원인이 됐던 영토 문제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양국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의 이해가 엇갈린 남중국해의 스프라틀리(난사ㆍ南沙) 군도와 중국의 무단 지배로 베트남이 발끈했던 파라셀(시사ㆍ西沙) 군도 등 남은 분쟁지역의 경우 항구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되 상호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양국 해군은 1988년 난사군도에서 대규모로 충돌한 바 있다. 두 정상은 또 상호 관계강화와 협력 증진을 위한 '신세기 전면적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통킹만은 1991년 양국이 국교를 수립한 이후에도 남중국해 최대의 화약고였다. 중국이 1990년대초 남중국해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이 지역에 자원탐사선 등을 대거 파견하자 베트남은 주권침해라며 무력으로 맞설 태세를 보였다.

중국이 1979년 동맹국인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을 전복했다는 이유로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던 진짜 이유도 통킹만 등을 둘러싼 영토 문제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양국은 베트남전쟁 종결 2년 만인 1977년 통킹만 영해 협상에 들어갔으나 합의하지 못했고 결국 전쟁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이마저 교착상태 끝에 휴전, 군사적 대치를 계속해야 했다.

1964년 8월 미국에 베트남전 개입의 명분을 제공한 곳이기도 했던 통킹만은 길이 500㎞, 너비 250㎞의 크기로 베트남의 하이퐁, 중국의 베이하이(北海) 등 군사ㆍ경제적 요충인 항구들이 위치해 있다.

한때 전쟁까지 치르며 남중국해의 패권을 다퉜던 양국이 이처럼 과거의 앙금을 풀고 밀착한 것은 무엇보다 전략적 이해 관계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과의 관계 발전은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과의 안정적인 관계 유지 ▦사회주의 국가간 협조 확인 등의 이점이 있다. 특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전후해 중국은 미국의 베트남 접근으로 인한 동남아시아의 역학관계 변화를 우려해왔다.

베트남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선배'이자 인접 강국인 중국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경제 발전에 전념하겠다는 계산이다.

베트남 소식통에 따르면 천 대통령은 이번 방중 기간 중 푸젠(福建)성의 아모이, 상하이(上海) 등을 시찰, 중국식 경제특구의 베트남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베트남은 또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지지하는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비공식적인 대만과의 교역에 대한 양해를 얻어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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