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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모스크바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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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모스크바 협정

입력
200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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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16일부터 25일까지 미국 영국 소련 세 나라의 외무 장관들이 모스크바에 모여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戰後) 문제 처리에 관한 회의를 갖고 27일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이 모스크바 회담은 한국에서는 '모스크바 삼상회의(三相會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이 회의의 결과에 한국의 신탁 통치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어 국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모스크바 협정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살피면, 한국을 5년 동안 미국 영국 소련 세 나라의 신탁 통치 아래 두고 이 나라들이 한국 독립 정부의 수립 과정으로서 임시 민주주의 정부의 수립을 원조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협의하기 위해 한국에 미ㆍ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 신탁 통치안이 국내에 알려지자, 이를 반대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협정 발표 사흘 뒤인 30일에 100여개의 사회단체와 정당이 서울에서 반탁(反託)전국대회를 열고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좌익도 우익도 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듬해 1월4일 좌익 진영은 태도를 바꾸어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나섰다. 이들은 임시 정부 수립의 의의를 강조하고, 신탁 통치는 '후견제(後見制) '라고 강변했다. 반탁과 찬탁의 대립이 우익과 좌익의 대립으로 나타난 것이다.

임시 정부 수립과 신탁 통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미ㆍ소 공동위원회는 반탁 단체와 정당을 임시 정부에 참여시킬 수 없다는 소련의 입장과 참여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대립돼, 46년 5월1일 공동 성명 제7호를 내놓은 뒤 흐지부지되었다.

역사의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신탁 통치와 전국적 임시 정부의 수립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면 혹시 전쟁과 분단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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