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을 여는 올 해는 시작부터 '2000' 이란 숫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인지 올 해 정치권에는 기억에 남을 숫자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우선 여야가 국회 표결이 있을때마다 숫자를 세기에 바빴고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문제도 숫자 싸움 이었다.△1
금년엔 사상 최초의 기록이 많았다. 우선 분단 이후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뜨거운 포옹을 한 뒤 '6ㆍ15 남북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8월15일과 11월말 두 차례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김 대통령은 또 12월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 우리나라를 노벨상 대열에 합류시켰다. 새해 예산안 통과가 정기국회 회기를 넘긴 것도 5ㆍ16 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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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2인자'였던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이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 등이 제기한 '2선 퇴진론'에 휘말려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행정부의 '2인자'인 총리 자리도 김종필(金鍾泌)-박태준(朴泰俊)-이한동(李漢東) 총리 등으로 주인이 두 번 바뀌었다.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이 11월 14일 "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민회의는 '제2 창당'을 선언, 1월20일 간판을 민주당으로 바꾸었다. 민주당은 4ㆍ13 총선 후에도 여전히 제2당에 머물렀다.
△3
민주당에서는 "3인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얘기가 자주 나왔다. 8월 2일 민주당 강운태(姜雲太) 이강래(李康來) 정범구(鄭範九) 의원 등 3명은 '단독국회'에 반대하며 당 지도부의 출국 금지령을 어기고 미국으로 출국해 파문을 일으켰다. 12월 19일 김 대통령이 김중권(金重權) 대표를 임명할 때도 민주당 정범구 이호웅(李浩雄) 이재정(李在禎) 의원 등 3명이 모임을 갖고 반기를 들었다.
한나라당에서는 5ㆍ31 전당대회 후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새로운 측근으로 등장한 주진우(朱鎭旴) 총재비서실장 권철현(權哲賢)대변인 맹형규(孟亨奎) 기획위원장 등은 '신 3인방' 으로 불렸다. 4ㆍ13 총선 때 경기 광주에서 3표차로 낙선한 민주당 문학진(文學振) 후보에게는 '문 세표'란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김성호(金成鎬) 원희룡(元喜龍) 정진석(鄭鎭碩) 의원등 '386세대' 10여명이 16대 국회에 진출, 이들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연말 화두로 떠오른 정계개편설과 관련 김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손잡는 '3김연합론'도 시선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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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3 총선은 여소야대 정국을 낳았다. 한나라당 133석, 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 민국당 2석, 한국신당 1석, 무소속 5석으로 나타나 어느 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황금분할'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나중에 호남출신 무소속 '4명'이 민주당으로 둥지를 옮겨 민주당 의석은 119석으로 늘었고, 무소속은 1석으로 줄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운동으로 김윤환(金潤煥) 민국당 대표 등 상당수 중진들이 2선으로 물러나게 됐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도 여야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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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7일 밤 검찰 수뇌부 탄핵안 상정이 추진되자 강창희(姜昌熙) 이완구(李完九) 정우택(鄭宇澤) 의원 등 자민련 의원 6명은 표결 불참이란 지도부 방침을 어기고 본회의장에 입장해 여권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6인의 항명은 비(非)한나라당 연대를 뒤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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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31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8ㆍ30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각각 치러진 부총재ㆍ 최고위원 경선에서 7위 후보가 '럭키 세븐'이란 말에 걸맞게 막차를 타는 행운을 안았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의원과 한나라당 김진재(金鎭載) 의원이 각각 7위로 최고위원과 부총재 경선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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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자민련은 교섭단체 요건을 현행 20석으로 10석으로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려다 야당과 정면 충돌했다. 7월24일 민주당과 자민련은 국회 운영위에서 야당의 저지를 뚫고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해 여야 대치 정국을 초래했다. 양당은 12월 18일에도 국회법 개정안 상정을 시도하다 야당과 부딪쳤다.
△13
민주당 이재정 의원 등 초ㆍ재선 의원 13명이 9월15일 긴급모임을 갖고 정국파행과 관련 김 대통령과 당지도부를 강력히 비판하는 '항명 파동'을 일으켜 여권 내부에 충격을 주었다. 민주당 대표가 된 김중권 후보는 4ㆍ13 총선에서 고향인 울진ㆍ봉화에 서 13표차로 낙선했다.
△40
여야는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40조원 규모의 공적자금 동의안을 처리했다. 여야는 또 준 공적자금 27조원, 1차 공적자금 64조원, 회수 재투입분 18조원 등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 109조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내년 1월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100
여야는 24일 정부의 예산안에서 8,000억원을 순 삭감하기로 합의, 새해 예산안 규모가 처음으로 100조를 넘겨 100조 2,300억원이 됐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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