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에 접어 들면서 갑자기 국내 바둑계 타이틀 판도가 확 바뀌었다. '4인방 시대'가 저물고 이른바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그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각 기전별 역대 타이틀 보유자 명단을 살펴 보니 더욱 감개가 무량하다.
현대 바둑 초창기였던 60년대에는 조남철, 김인의 이름뿐이었다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윤기현 하찬석 강철민 정창현 김희중의 이름이 간혹 눈에 띄더니 7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조훈현과 서봉수의 독무대였다.
설상가상으로 80년대 후반부터 이창호와 유창혁이 가세하면서 국내 바둑계는 오로지 정상 4인방 '그들만의 잔치'로 변했다.
그동안 숱한 도전자들이 4인방 아성을 공략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80년대에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는 하찬석 당시 7단(84년 박카스배와 85년 바둑왕)과 강훈 7단(86년 박카스배) 양재호 6단(89년 동양증권배) 등 불과 3명뿐이고
그나마 90년대 들어 와서는 단 한 명도 4인방의 벽을 넘지 못했으니 4인방의 '독재'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 루이나이웨이 9단과 최명훈 7단, 이세돌 3단, 목진석 5단 등 무려 4명이나 4인방 아성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실로 한국 바둑의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를 계기로 4인방 시대가 종막을 고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이와 관련, 바둑가에 오래 전부터 떠도는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 하나 있다. 이른바 '10년 주기설'로 국내 바둑계가 지금까지 10년 주기로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는 것.
한국 바둑의 대부 조남철 선생이 70년 명인전 우승을 끝으로 타이틀 무대에서 물러나자 70년대 초반 잠깐 백가쟁명의 시대가 도래했으나 후반 들어 조훈현이 등장하면서 다시 영토를 통합, 80년에 '1차 천하통일'로 본격적인 '조훈현 시대'가 열렸다.
조가 90년 최고위전에서 이창호에게 무너지면서 다시 '이창호 시대'가 지금까지 계속됐으므로 이제 2000년을 맞아 바둑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얘기다. 하지만 20년 아성을 지키기 위한 4인방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므로 새해 바둑계의 모습이 과연 어떠할지 벌써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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