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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자살하는 유일한 동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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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자살하는 유일한 동물,인간

입력
2000.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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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길어진다 싶더니 드디어 촉탁 살인에까지 이르렀다. 자살률이 특별히 높은 나라인 일본에서는 '자살'이라는 검색어로 무려 몇 만개의 웹사이트를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젠 우리 나라에도 자살사이트들이 비온 뒤 독버섯 마냥 돋아나고 있다.카뮈는 자살을 가리켜 진정한 의미의 유일한 철학적 문제라 했다. 생물학적으로도 단연 비길 데 없는 의문거리다. 보다 많은 유전자들을 후세에 퍼뜨리도록 만들어진 '생존기계'가 스스로 스위치를 끈다는 것은 어느 기준으로 보나 설명하기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살은 두 눈을 부릅뜨고 늘 우리 곁에 서 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자살이다.

우리 나라의 자살률도 최근 들어 세계 평균을 웃돌기 시작했으며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설치류에 속하는 레밍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 중 유일하게 자살을 한다고 알려졌다.

주로 북구에 서식하는 이 작은 동물들은 이른 봄 미처 얼음이 채 녹지도 않은 차디찬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엄청난 숫자가 한꺼번에 집단자살을 한다고 말이다.

이 진기한 '현상'에 생물학자들은 앞을 다퉈 그럴듯한 논리를 부여했다. 먹이와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두가 살겠다고 발버둥치다보면 함께 몰락할 수 있기 때문에 레밍들의 일부가 다른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설명이다.

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는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레밍들은 그저 미끄러운 얼음판을 달리다 미처 멈추지 못해 익사할 뿐이다.

아주 간단한 가상현실을 펼쳐보자. 남을 위해 기꺼이 한 목숨 바치겠다는 숭고한 레밍들의 죽음을 행한 대열 저 뒤쪽에 은밀하게 구명조끼를 두른 얌체 레밍 한 마리를 상상해 보라.

이듬해엔 서너 마리의 레밍들이 구명조끼를 두르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 해엔 열 몇 마리, 또 그 다음 해엔 몇 십 마리로 늘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숭고한 레밍들의 고귀한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 전달되지 못하고 얌체 유전자들만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자살 성향이 진화하기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유교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자기 몸을 함부로 해칠 수 없다 가르친다. 기독교도 자살이란 살인과 마찬가지이며 영혼에게 큰 벌이 내린다고 경고한다. 자살은 살인보다 훨씬 악질적이다.

왜냐하면 후회의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신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가능성조차 스스로 제거하기 때문이다.

자살 도우미의 삶을 그린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작가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쓰곤 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그렇다면 자살도 결국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우리의 몸부림인가.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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