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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功臣이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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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功臣이 가야 할 길

입력
2000.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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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공신(功臣)에 대한 처리는 제왕에게 아주 골치 아픈 문제였다. 정적이나 경쟁상대를 없애고 대권을 움켜쥔 군주의 다음 행보는 바로 공신을 숙청하는 일이었다.공신을 성공적으로 숙청한 군주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며 민심을 얻고, 공신을 내치지 못하고 옆에 남겨둔 군주는 민심을 잃고 끝내는 모반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공신은 공을 세운 뒤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범려(范?)와 한신(韓信)의 예를 들며 공신의 엇갈린 운명을 보여준다.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나라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둔 범려는 '큰 명예를 짊어지고 오래 살기는 어렵다'며 사직서를 내고 "나는 그대와 나라를 나누어 가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를 죽이겠다"며 붙잡는 구천을 뿌리치고 월나라를 떠난다. 월나라를 떠나면서 범려는 역사에 회자되는 말을 남긴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를 삶는다(狡兎死 走狗烹).'

공신들의 엇갈린 운명

반면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 개국의 1등 공신이 된 명장 한신(韓信)은 대권에 대한 미련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제후로 머무르다 유방에 의해 3족이 멸하는 화를 당했다. 위험이 닥치는 것을 깨달은 한신은 300년전 범려가 남긴 토사구팽이란 말을 되뇌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군주들이 대업을 이룬 뒤 공신을 숙청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언로(言路)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물러날 때를 모르는 공신은 군주 옆에서 공신으로서의 혜택을 계속 누리며 권력을 휘두르려 하기 마련이다. 개혁보다는 현상유지에 안주해 개혁을 요구하는 백성의 소리는 차단해버리고 군주가 듣기 좋은 소리만 전한다.

대업을 일으킨 군주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 바로 이 같은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자신을 도왔던 공신을 숙청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秦)나라의 멸망원인을 '막힌 언로'에서 찾은 사마천의 혜안은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사마천은 언론과 문화를 철저하게 탄압했던 진시황(秦始皇)과 그의 아들인 2세 황제 호해(胡亥)가 공신에 둘러싸여 백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충언을 하는 신하들의 목을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어버리는 일을 자행하면서 천하의 지혜로운 선비들조차 입을 다물어 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막힌 언로를 뚫어야 하는 까닭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가신(家臣)들을 보는 국민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김 대통령이 가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 또한 그냥 넘기지 않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 터져나온 '가신 퇴진' 요구에 상당수 동교동계 인사들을 2선으로 물리고 당대표를 바꾸고 당직을 개편했지만 개혁의 소리는 여전한 것 같다.

김 대통령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광주렝幻꼰熾だ~ 시민단체들까지 현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그 동안 김 대통령 주변의 언로가 제대로 열려 있었는지 의문을 품는다.

물론 진시황 때와 지금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사마천이 갈파한 '위와 아래의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상한다(雍蔽之 國傷也)'는 이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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