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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北주민의 시련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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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北주민의 시련을 생각하라

입력
2000.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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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KBS의 '북한리포트'라는 프로에서 신천시(市)에 대한 소개와 북한의 의료상황을 보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사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북한을 유토피아로 인식시키려는 듯해서 몹시 불쾌했었다. KBS가 북한 텔레비젼방송국에 의뢰해서 제작한 이전 프로그램에서 개성과 안주의 사적지는 훌륭하게 보존이 되어있었고 공장은 시설이 좋고 생산성이 높았으며 공원이나 명승지 같은 휴식공간이 쾌적하고 주민들은 모두 영양상태가 양호하고 의욕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들과 스튜디오에 나온 방청객들은 모두 그 비디오에 담긴 북한의 모습을 북한의 실상으로 생각하는 듯, 감탄 일색이었다.

그렇게 부유하고 활기 찬 북한에 지금 극도의 경제 불안을 겪고 있는 남한이 왜 막대한 지원을 해야 하는가 같은 의문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주 프로를 시청하고 나서는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기름진 얼굴과 건장한 체구의 잘 입은 주민은 볼 수 없었고 고생에 찌들고 초췌한 보통 사람들 뿐이었다.

평양이 지척인 신천에서, 국가대표 운동 선수가 된 딸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평양 구경을 했겠느냐며 자랑스러워하는 중노의 농부, 국가대표 선수가 났다고 축하해주러 온 검게 그을고 삐쩍 마른 이웃 사람들, 모두가 나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게 해 준 그 프로그램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신천 소개에 이어 보여 준 유진벨 재단이 벌이는 결핵구호사업소개 부분에서, X-레이 필름이 없어서 투시를 하느라고 수 십년간 무수히 방사선을 쪼인 의사들, 그리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북한 서민들을 보면서, 미국의 구호를 받았다는 이유로 어느 날 그들이 시련을 당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는 한민족 공멸을 몰고 올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해야한다. 그리고 북한 민중을 영원한 빈곤과 압제에서 구하기 위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북한의 수뇌부가 개방을 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체제의 존속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그들의 목표나 의식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까, 마지못해 개방을 하는 북한의 수뇌부가, 국민들이 체제에 회의를 품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리라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스탈린은 대전 중에 유럽 전선에 나갔다 온 군인들을 전부 숙청했다.

소련에 자유의 바람이 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포로들 중에서 대만으로의 송환을 택하지 않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귀환한 군인들을, 대만을 택한 다수의 동료들의 회유와 협박을 뿌리치고 돌아온 충성분자들인데도 반역자 취급을 하고 갖은 박해를 가했다. 폐쇄체제의 체제유지 노력은 이렇게 비인간적인 것이다.

탈북한 전 북한 양강도 인민위원회 군수보장국 책임지도원은 지난해 2~8월 양강도 혜산시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인민 19명이 공개 총살됐다고 전했다.

지금 북한 민중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과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북한 민중의 희생을 최소화하도록 조심하고 배려해야 한다.

대민접촉에 있어서는 그들의 빈곤상이나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실토를 유도해 내려 하지말고 현 단계에서는 그저 동족애를 보이고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것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고, 북한 동포에게는 동독이나 동구의 시민들에게보다 엄청나게 큰 고난이 남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가자.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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