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갔다.성탄 전야, 흰 눈이 내리는 24일 밤 미당이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삼성서울병원에 하나 둘씩 모여든 문인들은 "우리 문단의 큰 별이 졌다"며 애통해 했다.
문인들은 이 병원 영안실 15호실에 마련된 빈소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 뒤 그가 우리 문단사에 남긴 업적과 발자취를 밤새 회고했다.
미당의 제자인 동국대 최종림(崔鍾林ㆍ49ㆍ동국대)교수는 "미당은 탁월한 언어를 통해 우리 문학을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끈 분이었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미당의 임종은 최 교수와 작은 아들 윤(43)씨, 큰 며느리 강은자(60)씨 등 3명이 지켰다.
최 교수는 "선생은 22일 저녁때까지 조금 의식이 있었으나 23일 오전부터 상태 악화했다"며 "이후 의식이 희박해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셨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의식이 희박해지기 전 '어디 아프시냐'고 하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편안한 모습을 보이셨다"고 미당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미당의 생애와 시
2000년의 끝자락에 전해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株) 시인의 부음은 20세기 한국 시어의 종언(終焉)으로 들린다.
그만큼 미당의 시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 한국인의 마음 근저에 흐르는 가락을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로 표출한 결정체였다고 평가된다.
비록 일제 말기의 친일 행적과 제5공화국 시절 친정권적인 행태로 비판받으면서 그의 생애 자체가 매도되기도 했지만, 그가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한 대시인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시인' '살아있는 한국 시사(詩史)' 혹은 '시선(詩仙)'으로까지 불리는 미당은 1915년 음력 5월 18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밤이면 당산(堂山)의 느티나뭇골에서 밤새워 울던 소쩍새(두견새)들의 서럽던 울음소리가 아직도 내 뼛속에는 배어들어 있다"고 회고했듯이 미당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질마재는 그의 시 전체를 관류하는 토속적 분위기의 원형이 형성된 곳이었다.
그가 23세 때 쓴 시 '자화상'의 시구,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았다'와 '스물세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는 바로 식민지시대의 역사적 불모성, 누대의 가난을 뚫는 생명력을 벌거숭이의 육성처럼 표출한 언어였다.
그의 초기 시어는 이처럼 시집 '화사집'과 '귀촉도'에서 꽃뱀(화사ㆍ 花蛇)의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처럼 분출했다.
하지만 6ㆍ25전쟁을 겪으면서 그의 시는 휴머니즘이라는 영원성을 추구하게 된다. 전쟁의 난세에서 그는 선조들의 생존방식을 궁구하면서 삼국사 연구에 골몰했다. 그래서 나온 시집이 '신라초(新羅抄)'와 '동천(冬天)'이다.
'영원한 정신적 생명' 곧 '영생(永生)'의 추구가 곧 자신의 시력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던 미당은 스스로를 "평생 시만 써온 미련한 소"라고 비유했다. 소처럼 그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시작을 멈추지 않는 창조의 정열로 천상 시인의 모습을 보였다.
미당은 일반인들이 애송하는 시를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남기기도 했을뿐더러, 현대 한국 시인 중에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시인을 찾기도 또한 힘들다.
미당보다 한 살이 많았던 소설가 고 김동리에 이어, 박두진 시인을 마지막으로 청록파 시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올해 소설가 황순원마저 별세함으로써 사실상 한국 현대문학의 주춧돌을 놓았던 대가들은 거의가 세월의 힘에 스러져갔다.
미당의 타계는 새삼 이 점을 돌이키게 한다. 그가 남긴 1,000여 편의 시는 그대로 20세기 한국 정신의 원형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미소속에 갔다.
최종림 교수는 "의식이 희박해지기 전 '어디 아프시냐'고 하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편안한 모습을 보이셨다"고 미당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미당 서정주 연보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 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壁)' 당선, '시인부락(詩人部落)' 창간
▦1941년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 출간
▦1954년 예술원 회원, 서라벌예대 교수
▦1959년 동국대 교수
▦1971년 현대시인협회장
▦1977년 문인협회 이사장
▦1994년 '미당 전집'(전6권) 출간
▦1997년 제15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 출간
▦예술원상(1966) 대한민국문학상(1975) 등 수상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솟작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종오기자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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