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네거리의 한 허름한 빌딩에 젊은 철학자들의 공동체 철학아카데미가 둥지를 틀고 있다. 철학을 제대로 마음껏 하고 싶어서 서강대 교수직을 버리고 나온 이정우 원장을 비롯해 왕성하게 활동하는 30~40대 철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살아있는 철학' '열린 철학'을 지향하는 철학아카데미는 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수강생은 철학을 공부하거나 문화에 종사하는 20~30대가 대부분이지만 주부ㆍ회사원ㆍ의사ㆍ교사도 있다.
봄에 8과목 80여명에 그쳤던 수강생이 여름, 가을 학기를 지나며 점점 불어나더니 겨울 학기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과목을 포함해 18개 과목 350여 명으로 예상된다.
기존 입문강좌ㆍ일반강좌ㆍ전문강좌 외에 청소년강좌가 생겼고, 수강생들의 요청으로 라틴어 특별강좌도 추가됐다.
'동양고전 두루치기'(강사 전호근)가 개강한 20일, 강의실에 8명이 모였다. 가을 학기에도 수강한 가정주부와 회사원 등 4명이 포함돼 있다. 보험회사에 다니다 그만 둔 이재열(42)씨도 그중 하나다. 가을 학기의 9개 과목을 거의 다 들었다.
겨울 학기도 6개 과목을 신청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상고 졸업 후 23년 간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잊고 지냈던 철학을 만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 '장자' 강의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위로가 되더군요.
지방에서 들으러 오는 분도 봤는데, 지방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집에 가서 강의 노트를 정리한다는 그는 정성껏 정리된 지난 학기 노트를 보여줬다.
이날 전호근씨의 강의 주제는 '논어'. 논어의 가치와 읽는 법에 이어 주요 문장의 설명에 들어갔다. 2시간 강의 중 논어 첫 문장을 다루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다음 주는 노자를 다룰텐데, 워낙 어려우니 머리에 쥐 날 각오를 하고 오라"고 했다. 수업은 중국의 고사와 여러 문헌을 인용하며 흥미롭게 진행됐다.
이정우 원장은 '강의 분위기가 더없이 진지하다'며 '대학 철학수업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18일의 '고전 세계로의 여행'(서양철학, 강사 김석수)은 2시간 수업이 토론에 불이 붙어 3시간이 됐다.
'철학이 밥 먹여주냐'고 비웃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이 원장은 '현실이 척박할수록 삶의 기둥이 될 철학은 필요하다'며 '삶에 대해 깊고 체계적으로 사유하고 싶은 사람을 모두 초대한다'고 말했다.
겨울학기에는 동양과 한국사상의 이해, 현대인의 근본 정서, 과학과 기술의 문제, 철학적 사유의 근원, 프랑스 철학의 전통과 얼개를 다루는 강의 등이 개설됐다.
청소년강좌인 '장자와 떠나는 철학 여행'(김시천)은 새해 1월 6일, 일반강좌인 '시지각에 대한 몸철학적 이해'(조광제), '기술과 운명'(이정우)은 다음 주 개강한다. (02) 722-2870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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