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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위치망각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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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위치망각한 정부

입력
2000.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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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파업을 막기 위해 21일 저녁부터 노ㆍ정간 마라톤 협상이 벌어졌던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회의실.국민ㆍ주택은행간 합병논의 전면백지화를 요구하는 금융노조의 주장에 정부 고위당국자는 "그것은 노조가 간여할 문제가 아니다.

합병결정은 주주의 고유영역"이라고 잘라 말했다.

'합병은 노조와 협상의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그 동안 정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해왔던 금융구조조정의 기본원칙. 13일 행장실 감금끝에 노조측에 '합병논의 중단'을 약속했던 국민은행장에 대해 금융당국은 "노조와 합병을 타협한 줏대없는 사람"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22일 새벽 타결된 노ㆍ정간 합의안에서 정부는 구조조정의 철칙을 스스로 뒤집고 말았다. 한빛 평화 광주 경남 등 지주회사 편입대상 4개 부실은행의 실질통합(도매ㆍ소매ㆍ투자은행식 기능별 재편) 시기를 연기하자는 노조측 주장에 도장을 찍고 만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협상은 했지만 원칙을 타협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부이기에 앞서, 이들 4개 은행 지분을 100% 보유할 최대주주이자 유일주주다.

당국의 합병원칙을 따른다면 지주회사 통합은 대주주인 정부의 고유결정사항이지, 결코 노조와 협의대상이 될 수 없었다.

눈앞에 닥친 혼란(파업)만을 피하기 위해, 정부는 자신이 위치(대주주)도 망각한 채 구조조정의 경기규칙을 깨뜨리는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정부가 과연 어떤 은행장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구조조정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부의 행태를 보면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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