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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자살사이트 파문 대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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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자살사이트 파문 대책은 없나

입력
2000.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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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大 이근후교수-라이코스 코리아 정문술사장최근 인터넷 자살사이트 회원인 20대 젊은이 2명이 동반자살을 하고, 한 젊은이가 역시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사람의 요청으로 그를 '촉탁 살인'한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인터넷을 통한 자살유혹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의 문턱까지 갔다가 재기한 사업가와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자살을 막고, 이를 위해 가족과 사회는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근후(李根厚)=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61년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73년부터 이화여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89년부터 네팔-이화 의료봉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95년 사회봉사단체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 공동대표로 활동중이다. '정신치료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등 40여 권의 저서가 있다.

■정문술(鄭文述)= 193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졸업했고 62년부터 18년간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며 기조실 조정과장을 역임했다.

80년 중정에서 강제퇴직당한 뒤 83년 반도체칩 생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지난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라이코스 코리아를 설립했다. 98년 저서 '왜 벌써 절망합니까'를 냈다.

-얼마전 인터넷 자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 이근후 = 자살의 본질적 원인은 개인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는가 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아와 성격의 강도에 달려있지요.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은 물에 휩쓸리는 것이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에 빠지는 것이에요.

사회학자들처럼 사회적 요인을 강조한다면 사회의 3분의 2쯤은 다 자살해야하지요.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들은 극소수 아닙니까. 아우슈비츠 수용소같이 생애 대한 절망감이 가득찬 곳에서는 자살률이 0%였어요. 반면 스웨덴 등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있는 북유럽이 한 때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잖아요.

▦ 정문술 = 부모들 책임이 가장 큽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산 사람은 절대로 자살할 이유가 없거든요. 효의 근본이 '부모가 주신 몸을 보존하는 것'이잖아요.

몸이 아프면 가장 마음 아프고 서글퍼 하시는 분이 부모 아닙니까. 요즘 아이들 중에는 부모는 모르고 자기만 아는 아이들이 많은데 부모들이 모범이 되지 못한 것도 그 이유죠.

여기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이 인터넷이에요. 옛날에는 '같이 죽자' 는 나쁜 생각이 들었을 때도 동조자들을 찾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얼굴을 볼 필요도 없이 동조자들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된거죠.

인터넷 자살방조 문제 심각

- 정사장님도 자살을 결심했던 적이 있으시다면서요.

▦ 정문술 = 제가 마흔을 좀 넘었을 때지요. 18년 동안 승승장구 잘 다니던 직장에서 느닷없이 ?겨나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퇴직금 2,000만원을 사기당했어요.

그 때 처음으로 사회의 쓴맛을 봤죠. 2년 뒤 미래산업을 창업했는데 첫해 3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사회가 만만하게 보이더군요. 그때 자만해서 기술력이 높은 검사장비를 개발하려다가 손해를 봤어요. 제 재산 뿐 아니라 친구 돈, 처남 등이 쏟아부은 돈 18억원을 몽땅 날렸어요.

85년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이제 다시는 기회가 안올 것' 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를 통해 다섯 자식들에게도 같이 죽자고 해 동의를 얻었습니다.

이건 정말 부모로서 자식에게 씻지 못할 큰 죄를 지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산가리는 구하지 못했고 한달 동안 조금씩 수면제를 구하러 다니다가 아예 온 가족이 차를 몰고 피크닉을 가서 그대로 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죠.

▦ 이근후 =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돌리셨나요?

▦ 정문술 = 죽을 방법을 생각하며 한동안 아침마다 소주를 마시고 집 근처 청계산을 다녔어요. 어느 스산한 가을날 낙엽을 밟고 있는데 불현듯 '최고의 기술에 도전하다가 좌절했으니 수준을 한단계 낮춰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일단 살자고 마음 먹었더니 급속도로 생각이 진행되더군요. 곧장 회사 연구소로 달려 가서 다시 해보자고 했더니 연구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살았습니다.(웃음)

- 인터넷의 파급력이 엄청난데 자살을 방조한다면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 이근후 =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런 현상이 확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환자상담을 해보면 정확한 수치는 잡히지 않지만 강한 자살유혹을 느끼거나 자살시도를 했던 사람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어요.

여기에 인터넷이 끼어들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해당 인터넷 폐쇄는 일시적 대증요법에 불과합니다. 인터넷 시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윤리나 가치기준 마련에 사회 전체가 하루빨리 나서야 합니다.

▦ 정문술 = 저 역시 인터넷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저희도 유해한 내용을 적발하기 위해 관리자를 두고 있지만 인터넷 특성상 적발이 쉽지는 않더군요.

또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등 외국의 유행에 너무나 민감해졌다는 점도 한 원인이 아닐까요. 일본엔 자살 관련 사이트가 150개가 넘는다고 해요. 이번 사건을 낸 것도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급변사회, 윤리가 못따라가

▦ 이근후 = 제가 알기로 대부분 자살 사이트를 연 취지는 자살 충동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역기능이 생긴 것이죠. 때문에 인터넷에 자살 원인을 돌리는 것은 장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논리와 비슷한 것이지요. 유교 문화권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를 못하겠지만 옛날 제가 유럽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 '자살 센터'라는 곳도 있었어요.

시대가 급속도로 변한 만큼 이에 걸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이왕지사 쏟아진 물로 보고 현실적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지금의 기준에만 매달려서는 효과가 적을 겁니다.

-자살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없을까요

▦ 정문술 =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관심을 쏟는 것입니다. 자살을 막는 데는 우리가 오랜 동안 지녀왔던 가족 사랑의 가치가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저는 나름대로 사업에 성공했습니다만, 주위를 둘러봐도 결국은 기업윤리를 충실히 지킨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아무리 세태가 변해도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묵은 장'과 같은, 시대를 관통하는 전통적 윤리가 이럴 때일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근후 = 사실 자살을 막기 힘든 것은 사회가 너무 급격히 변해 윤리가 기능하기 어려운 점도 들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농경사회는 수천 년, 산업사회는 200년이 지속됐습니다. 그런데 정보사회는 그 변화의 단위가 불과 몇 개월로 짧아졌지요.

과거와 달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이 불가능해진 거에요. 옛날에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윤리가 기능을 했지만 인터넷이 확산된 세상엔 그런 규범보다 사회변화가 훨씬 앞서 있습니다.

"온라인 아니 사람과 대화해야"

-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 이근후 = 정사장님이 끝내 자살을 결행하지 않은 것은 사장님이 비록 자살계획이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을 많이 하셨기 때문이지요. 기억 나실지 모르겠지만 옛날 한강가에는 '잠깐만 참으세요'란 푯말이 서있었죠. 한순간만 넘기면 다른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만약 약을 샀더라도 한 번만 더 생각보세요. 그렇게 못한다면 전화로 상담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지요. 가령 생명의 전화, 사랑의 전화라는 것도 있잖아요.

재미있는 얘기 들려드릴까요. 제 환자 중에 '자살'을 하루종일 되뇌이던 사람이 있었어요. 듣고 있던 같은 병실 입원자가 "왜 당신은 '살자 살자' 그러느냐"고 물었다더군요. 자살을 연결해서 말하면 그렇게 들릴 수 있잖아요.

그 환자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고는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이 어찌 보면 한 단어, 종이 한 장 차이 아니겠어요? 한 고비만 넘기면 됩니다. 정사장님의 경우도 그런 것이지요.

건강하고 굳센 자아를 가진 사람이 외부 요인 때문에 자살하려 한다면 충동을 느꼈을 때 한번 더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요인이 없는데 자살하려 한다면 그건 병입니다. 바로 의사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살충동을 병으로 취급하고 치료해주고 있습니다.

▦ 정문술 = 자살을 하려고 결심을 해도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한 구석에 있는 겁니다.

본능이지요. 지금 되돌아보니 어떻게 죽을까 궁리한 것도, 물에 빠질 때 차문을 잠가두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살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다 안 죽으려는 수작이지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충동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스프링 같아서 반드시 반작용이 생깁니다. 그리고 선생님, 부모님, 어른들과 직접 대면하고 상의하세요. 온라인에서가 아니라 스킨십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면 분명히 나아집니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면서 시간을 끄세요.

유성식기자 ssyoo@hk.co.kr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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