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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도조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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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도조 히데키

입력
2000.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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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23일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쳤다. 64세였다. 도조는 도쿄에서 태어나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관동군 헌병사령관, 육군차관, 육군 대신 등을 역임한 뒤, 41년 10월 총리 대신이 되었다.육군 대신 시절부터 확전론자였던 그는 12월7일 진주만에 있는 미국 함대 기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이미 육군ㆍ내무 대신을 겸하고 있던 도조는 개전 뒤 독재를 더 강화해 43년에는 문부ㆍ상공ㆍ군수 대신을 겸임했고, 44년에는 참모총장까지 겸임했다.

그러나 전황이 전면적 파국에 이르자, 44년 7월에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종전 뒤에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A급 전범자로 극동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됐다.

흔히 도쿄재판이라고 불리는 극동 국제군사재판에서는 도조를 포함한 28명이 A급 전범자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심리 도중에 사망한 마쓰오카 요스케ㆍ나가노 오사미와 발광(發狂)한 오카와 슈메이를 빼고 나머지 25명에 대해 전원 유죄를 인정해서, 48년 11월12일 7명에게 교수형을, 16명에게 종신형을, 한 명에게 금고 20년을, 또다른 한 명에게 금고 7년의 형을 선고했다.

독일의 전범자를 소추ㆍ처벌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함께, 도쿄 재판은 국제 군사재판이 침략 전쟁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선례를 만듦으로써 전쟁 범죄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러나 일왕 히로히토는 기소되지 않았다.

올해 출간된 허버트 빅스의 '히로히토와 근대 일본의 형성'이라는 책은 전시의 일본 관리들이 쓴 회고록과 일기를 분석하며, 히로히토가 군국주의자들의 조종을 받았던 꼭두각시가 아니라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들을 직접 구상해낸 능동적 디자이너이자 전쟁 범죄자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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