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국 친구를 따라 조선족이 주최하는 청년 친목회에 갔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북한 유학생,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그리고 한국어를 전공하는 '조선어과' 중국학생들이 모여있었다.나이도 다르고 태어나서 자란 곳도 다르고,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도 달라 서먹할 줄 알았는데,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인지 담박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공부가 세게 바쁘시지요? (아주 힘드시지요?)"
"아니, 일 없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북경에서 밤에 혼자 다니기가 으쓸하지요?(무섭고 싫지요?)"
"그래 나그네랑 동무합네다. (남편이랑 같이 다닙니다.)"
"까마치를 어로스에서는 메라고 합니까(누룽지를 소련에서는 뭐라고 부릅니까?)" "까만밥이라고 합네다."
한국, 북한, 소련, 중국에서 쓰는 한국어는 단어와 표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차이가 재미를 더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투와 생소한 단어를 따라해 보면서 즐거워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의 언어를 자기도 모르게 섞어 쓰는 것도 흥미있었다.
구 소련에서 온 '까레스키' 즉, 고려인은 말끝마다 '오친 하라쇼'(아주 좋아요)라는 러시아말을 반복했고 조선족들은 샹빤(출근)이나 위에회이(약속)등 중국어 단어를 섞어 썼다. 북한학생은 '까부수자','자폭하자' 등 섬?한 단어도 많이 쓰지만, 예쁘게 다듬어진 이런 말도 쓰고 있었다.
"저런 끌신(슬리퍼), 물맞이 칸(샤워실)에서는 크게 소용되겠습니다."
그날 '다국적 한국어 사용 집단' 의 제일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내가 쓰는 외래어였다. 한국에서 아주 일상적으로 쓰는 스케쥴, 이슈, 칼럼 등 간단한 외래어에도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조선어과 중국학생도 한국말을 배울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외래어라고 말한다. 며칠 전에도 한국어 선생님이 연구실 책상 위에 있는 키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반 학생 중 아무도 키라는 '한국 말'을 몰라 한시간 동안 시청각실에 들어가지 못한 일이 있다면서 "그냥 열쇠라고 말하면 안 되나요?" 하고 묻는다.
외래어 얘기가 나오니까 고려인 학생이 북경에 와서 처음 한국 패션잡지를 보았을 때의 경험을 말했다. 한글로 쓰인 기사를 읽으면서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알 수가 없어서 몹시 당황했단다. 어떤 식의 글인지 짐작이 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겠지.
'페미닌한 라인과 그린 톤의 앙상블이 로맨틱하다.'
한국어를 통역하는 중국친구는 지난 달 한국에서 열린 인터넷 관련 회의에 갔는데 회의 내내 조사만 빼고는 몽땅 영어를 쓰는 통에 큰 애 먹었다며 영어통역사가 갔다면 더 좋았을 꺼라고 뼈있는 농담을 한다. 그 말을 해놓고는 행여 내 마음이 상했을까봐 이런 제의를 했다.
"자, 우리 건배합시다. 아름다운 한국 말을 위해!"
사실, 이 아이들의 지적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외래어 특히 영어를 쓸데없이 많이 섞어 말한다.
실험삼아 전문 직업인들이 사석에서 하는 얘기를 단 10분만 들어 보라. 정말 무차별로 영어를 쓰고 있지 않는가. 듣고 있으면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애처롭기도 하고 너무나 자연스러워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 남들이 자기를 그럴듯하게 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비웃는 줄도 모르고. 아니, 남 얘기 할 것 없다. 나는 어떤가? 나는 과연 '아름다운 우리 말'을 위해 떳떳하게 건배할 수 있는가?
한비야ㆍ 여행가ㆍ 난민구호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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