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T) 벤처 기업들은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고 공격 경영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웠다. 굴뚝 기업들이 내년 전망을 어둡게 보고 내실 다지기의 보수적 경영으로 선회했지만 벤처인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는 각오다.또한 네티즌들은 벤처가 향후 국가경쟁력 향상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본지와 e-비즈니스 포털 아이비즈넷(www.i-biznet.com)이 공동으로 11~15일 벤처 CEO 51명과 네티즌 4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우선 CEO와 네티즌들은 모두 현재 벤처 위기가 심각하다고 여겼다. CEO의 75.2%, 네티즌의 77.9%가 이렇게 답변했다.
하지만 현재가 벤처 위기임에 틀림없지만 내년에 사업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힌 CEO는 84.3%에 달했다. '현 상태 유지'나 '방어적 전개'는 15.8%에 그쳤다.
CEO들은 내년 IT비즈니스 경기의 전망에 대해서도 '나아질 것'(53.0%)이라고 낙관했다.
'비슷할 것'은 21.5%, '더 어려워질 것'은 23.6%였다. 네티즌들의 응답도 CEO응답과 비율에는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CEO들은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수익모델 발굴(88.2%)을 꼽아 '인터넷=공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년에 기대를 모을 분야로는 무선인터넷(76.5%) B2B(41.2%) 컨텐츠(29.4%)가 꼽혔다.
진승현(陳承鉉), 정현준(鄭炫埈) 등 일련의 벤처기업 사태의 원인에 대해 CEO들은 일부 CEO의 부도덕성(47.1%)과 제도상의 허점(29.4%) 투자자의 한탕주의(11.7%)를 꼽았다. 네티즌들은 일부 CEO의 부도덕성(35.5%) 투자자의 한탕주의(35.1%) 제도상의 허점(19.6%) 순으로 답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벤처가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냐는 질문에 '기여할 것'(92.5%)이라고 답해 벤처가 한국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그저 그렇다'거나 '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은 소수(7.7%)였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수익모델 개발 발등의 불"
전문가 진단·조언 "시장신뢰 회복하라"
현재의 벤처 위기는 진정한 벤처 정신은 사라지고 거품으로 가득했던 한국 벤처의 실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벤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제고와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비즈니스 컨설팅 전문업체인 에이전시닷컴코리아의 조민영(趙敏永) 대표는 "상당수 벤처인들은 그동안 시장이 기술보다 우선한다는 평범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해왔으며, 이제부터라도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벤처캐피털들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더라도 사업성이 없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면서 "기술이 확보됐다면 무턱대고 사업에 뛰어들지 말고 해당 분야의 예상 마켓 규모와 비즈니스 모델의 특허출원 가능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간 인수합병(M&A)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M&A업체인 타임앤컴퍼니의 송인준(宋寅準) 대표는 "대기업에 인수합병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는 벤처를 키워 코스닥에 상장시켜 독자 생존하는 것을 유일한 정석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 벤처 창업자들은 처음부터 시스코, 인텔같은 대기업의 사업구조를 분석해 이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업종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력이 튼튼한 전통적 굴뚝 기업과 벤처간에 매수 및 개발(A&D)을 적극 활용해 결합한다면 수직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벤처 지원을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곽수근(郭守根)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벤처의 신용도와 솔루션의 우수성 등을 분석하는 전문기관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일반 투자자가 벤처를 분석하기에는 정보와 지식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면서 "한국신용평가, 서울신용평가 등의 평가기관처럼 해당 벤처에 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계량화해서 공개하는 전문기관이 만들어진다면 투자자가 늘어나 당면 현안인 자금난 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장법률사무소의 백만기(白萬基) 변리사는 벤처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특허 행정의 선진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벤처특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벤처는 기술에 승부를 걸고 시장에서 대기업과 경쟁을 벌이는 입장이어서 신속하고 정확한 특허심사가 벤처 흥망을 좌우한다"면서 "특허청의 특허 심사관 수를 현재의 400여명에서 2배 이상 늘리고 선진 심사 시스템을 도입해야 특허를 가진 벤처 창업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델 컴퓨터는 PC생산 및 판매 방법에 관한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유사 방법까지 포함해 38건이나 출원해 경쟁업체의 시장진입을 막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국내 벤처들은 연구개발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으면서 비즈니스 모델 특허 출원의 중요성은 의외로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니텔의 강세호(姜世昊) 대표는 실패 위험성이 높은 벤처의 안전 장치로 벤처생존보험(가칭)을 제안했다. 운전자들이 사고에 대비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벤처의 성공가능성에 따라 요율을 정하고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강대표는 "벤처 설립자본금의 일부를 벤처생존보험으로 적립한다면 벤처가 실패하더라도 창업자들이 재기하고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무난히 기업공개절차를 마칠 수 있는 벤처, M&A 대상 벤처, A&D 벤처 등으로 보험료율을 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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