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동쪽 해안선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다로 향하는 모든 통로는 아우성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혀버린 길 위에서 아침을 맞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 날 동쪽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황홀한 일출은 없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근력 좋은 산꾼들만이 연봉 사이로 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새 밀레니엄을 맞았던 올 1월 1일의 일이었다.
이제 새해 일출 맞이는 여행의 으뜸 항목이 됐다. 일 천 년이라는 세월의 이정표는 없지만 이번 연말연시에도 고단하고 가슴 부푼 일출여행이 이어질 것이다. 사람의 어깨 틈이 아니라 온 가슴으로 해돋이를 맞을 수 있는, 비교적 인파가 적은 명소를 둘러본다.
▲태백산(강원 태백시)
*1월1일 일출 예상시각 오전 7시 38분
민족의 영산이다. 그래서 해맞이의 의미가 각별하다. 주봉인 장군봉은 1,567 ㎙. 그 옆으로 문수봉(1,517㎙)이 이어져 있다.
해발고도는 높지만 해발 800 여 ㎙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다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아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꼭대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고 중심계곡인 당골계곡에는 단군의 영정을 모신 단군성전이 있다.
태백산의 일출은 세 가지의 모습이다. 발 아래 구름이 끼었을 때에는 해가 운해 위로 떠오른다. 장엄하다. 비교적 날씨가 좋으면 태백시, 삼척시, 경북 울진군의 굵직한 연봉들 사이로 떠오른다. 계단처럼 이어진 봉우리들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날씨가 아주 좋으면 동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직접 본다. 행운이 따라야 한다. 아주 운이 나빠 해를 구경하지 못했더라도 정상의 설화와 문수봉의 돌탑을 돌아본다면 억울할 것이 없다. 새벽 산행을 위해 아이젠, 플래시는 필수. 마대자루를 배낭에 넣어가면 하산 길에 엉덩이 썰매를 즐길 수 있다. 관리사무소 (033)550-2741
▲마니산(인천 강화군/오전 7시 49분)
장거리 여행이 여의치 못한 사람들이 시도할 만한 코스. 해발 468 ㎙의 얕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사위를 둘러보는 맛이 어느 명산 못지 않다. 가파른 능선에 돌길과 계단이 이어져 등산의 묘미도 만끽할 수 있다.
산행은 화도면 상방리의 문현마을에서 시작한다. 관리사무소와 야영장을 지나면 오른쪽 양반길과 왼쪽 계단길로 갈리는데 대부분 계단길을 택한다.
힘은 조금 들지만 풍광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정상까지 918개의 계단으로 이어진다. 정상에는 참성단이 있다.
단군왕검이 이 곳에서 고천제를 지냈다고 한다. 전국체전의 성화가 채화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인천(영종도)국제공항이 눈에 들고 동쪽으로는 정족산과 길상산이 보인다.
마니산의 일출은 산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색깔의 조화가 매력이다. 아직 꺼지지 않은 새벽의 전등 불빛을 서서히 밀어내는 여명에서 강화의 너른 벌판을 완전히 밝히는 단계까지 감탄이 연이어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화의 갯벌에서 철새들의 군무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관리사무소 (032)937-1624
▲남해(경남 남해군/오전 7시 36분)
남해도의 으뜸은 금산이다. 금산은 세속의 염원을 끌어안고 있는 산이다. 9부 능선에 앉은 보리암은 남한 3대 기도터의 하나. 그래서 대학입시철이나 새해 아침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금산의 비경 중에서도 제1경은 해돋이이다. 정상 망대봉(望臺峯)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유혹한다.
동남쪽의 미조만에 섬들이 깨알같이 흩어져 있고 해는 그 섬들의 한가운데에서 떠오른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이 뒤엉킨 하늘, 검은 윤곽만 드러내는 섬들, 반짝거리며 끓어오르는 바다..
산을 오르는 길은 남과 북 두 곳으로 나있다. 북쪽의 복곡저수지 코스는 등산이 아닌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로(大路). 몸이 허락한다면 남쪽 상주해수욕장 인근에서 시작하는 등산 코스를 택하는 것이 사람의 물결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왕복 3시간 거리이다.
남면 설흘산도 일출이 좋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 아는 사람만 쉬쉬하며 찾는다. 앵강만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했던 노도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3254
▲통영ㆍ거제(경남 통영시/오전 7시 33분)
과거 뱃길로 이어졌던 통영과 거제는 이제 차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공동 여행권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거제의 일출명소는 시의 최동단인 장승포. 장승포에서는 날이 맑으면 대마도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장승포에서 남단 저구리까지 이어지는 해안일주도로(14번 국도)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통영에서는 통영만을 내려다보는 산양읍(미륵도) 동쪽 해안선이 일출 포인트. 통영대교를 건너면 미륵도를 빙 도는 해안일주도로가 펼쳐지는데 남한 해안 드라이브 코스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산양읍의 남단 달아마을은 다도해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푹 젖을 수 있는 곳. 마을 뒷산인 달아공원에서 다도해를 조망하기 좋다.
통영과 거제의 일출은 통통거리는 고깃배의 동력소리와 함께 한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가르는 배의 꽁무니에 갈매기 떼가 따라 붙고, 그 뒤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
남쪽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거제시청 관광과 (055)639-8363 통영시청 관광과 (055)645-0101
▲남애(강원 양양군/오전 7시 42분)
해수욕장, 방파제와 등대, 호수, 바위섬, 고깃배와 횟집 등 바다의 정취를 한꺼번에 모아 놓은 집약형 바닷가이다. 양양군의 남쪽 끄트머리인 현남면에 있다.
2~3년 전만 해도 겨울에는 거의 외지인의 왕래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동해안에서도 손꼽히는 겨울바다의 명소가 됐다.
2㎞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해수욕장으로도 빼어난 남애 3리에는 포매호가 있다. 바닷바람과 모래가 막아놓은 전형적인 사호(砂湖)이다.
외롭게 바다에 떠있는 양야도 안쪽의 남애 2리는 1,000여 주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남애항. 새벽이면 고깃배들이 들어오는데 뱃전에서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생선을 직접 살 수 있다.
남애항의 일출은 약 200㎙ 정도 뻗어나간 방파제 위에서 볼 수 있다. 방파제 끄트머리에 붉은 색 등대가 있다. 등대와 일출을 소품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현남면사무소 (033)671-6301
권오현기자
koh@hk.co.kr
■해맞이 축제 3선
해맞이 축제는 지방축제 중 가장 많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열린다. 세월을 거듭하면서 규모와 내용, 지역의 의미 등에서 우열이 가려지고 있다.
남한 육지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경북 포항시의 한민족 해맞이 축전, 다양한 이벤트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강원 동해시의 해맞이 축제, 서해안이면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충남 서천군의 마량포 해돋이 축제 등이 사람 모으기에 성공한 행사로 꼽힌다.
어김없이 31일부터 새해 1월 1일 이틀간 열린다.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열리는 곳은 영일만을 남쪽으로 감싸고 있는 호미곶. 한반도의 형상이 만주벌판을 할퀴는 호랑이의 모습이라고 볼 때 호랑이 꼬리에 해당되는 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장기곶등대와 등대박물관이 서 있다. 지금은 대규모 새천년 기념공원이 조성중이다. 꼬리의 끝인 대보면에서 남쪽 구룡포로 이어지는 13.5㎞의 해안도로(912번)가 일출을 보기에 좋다.
다양한 공연과 레이저쇼, 에어쇼, 해상퍼레이드 등이 펼쳐진다. 주최측은 참가인원을 10만 명 정도로 예상하고 912번 지방도로를 일방통행시키고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대보면까지 두 척의 여객선을 임시 운항한다. 포항시청 (054)245-6101~3
동해시의 해맞이 축제는 해돋이 명소인 추암과 망상해변, 국민관광지 1호인 무릉계곡, 두타산을 연계해 벌어진다. 관광객이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이 특징.
인기가 높은 것은 두타산 등반대회와 오징어배 해상 퍼레이드.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두타산 등반대회를 통해 우수 등반자를 시상하고 참여 관광객에게 기념품도 선물한다.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오징어배 20 여 척이 펼치는 해상 퍼레이드는 특히 관광객들이 환호하는 행사. 퍼레이드는 배에서 쏘아올리는 붉은 색 폭죽으로 절정을 맞는다.
동해시청 관광개발과 (033)530-2227
마량포에 해돋이가 일어나는 때는 동지(21일)를 전후한 시기부터 2월 중순까지. 남동쪽 수평선으로 해가 뜬다.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지난 행사에는 모두 8만 여 명이 다녀갔다.
작은 포구의 행사로서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해돋이 사물놀이, 소원성취 풍선날리기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24일부터 1월 4일까지 특산물과 활어 장터를 운영한다. 서천군청 문화공보실(041)95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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