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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이재명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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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이재명 의거

입력
2000.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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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상상하는 테러리스트의 얼굴은 비장하다. 그러나 저격에 실패한 테러리스트의 표정은 어떤 것일까? 1909년 12월22일 이재명이라는 스무살 난 청년이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찔렀다. 이완용은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었으나, 결국 살아났다.이재명은 현장에서 체포돼 그 이듬해에 사형당했다. 그는 이완용이나 일제에게는 테러리스트였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당연히 자유의 투사이고 해방의 전사다.

이재명 의사(1890~1910)는 평북 선천 출생이다. 열다섯 살에 미국노동이민사(美國勞動移民社)의 하와이 이민 모집에 응모해서 미국에 건너가 수년간 노동에 종사했다. 제1ㆍ2차 한일 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그는 항일 운동에 몸을 던지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 왔다.

이재명은 1909년 1월 이토 히로부미와 순종의 평양 순행 소식을 듣고 이토를 죽이기 위해서 동지들과 함께 평양역에 대기해 있었으나, 안창호의 만류로 단념했다. 이토는 결국 그해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사살되었다. 지나는 길에,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사살된 것이 그보다 꼭 70년 뒤라는 것을 기록해두자.

제1의 목표가 사라지자 이재명은 친일 매국노 이완용의 암살을 계획했다. 그 해 12월22일 서울의 명동 성당에서는 닷새 전에 죽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2세의 추도식이 있었다.

이완용은 그 추도식에 참가하고 나오다 이재명의 칼에 찔렸다. 운좋게 살아남은 이완용은 그 이듬해 8월 총리 대신으로서 정부의 전권위원(全權委員)이 돼 일본과 한일 병합조약을 체결했고, 그 공으로 일본의 백작이 되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거쳐 조선귀족원 회원이 되었고, 20년 후작에 올라 26년에 69세로 죽을 때까지 일제에 충성하며 호의호식했다. 두 이씨의 운명이 이렇게 달랐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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