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남측에 200만㎾의 전력지원을 요청하고 우선 50만㎾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현재 여러 측면을 감안한 타당성 여부를 검토중이다.이를 둘러싸고 전력을 제공하면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난을 덜어주고 남북 화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과 우리의 여유전력도 별로 없는 마당에 전략물자 생산에 쓰일지도 모를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찬성] 한국기업 경쟁력 제고, 경협 활성화
북한의 경제난은 에너지난과 식량난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에너지난은 곧 전력난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는 대북 전력지원을 검토해왔다. 그런데 15일 제4차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전력난을 솔직히 호소하면서 지원을 요청하자 문제가 된 것이다.
남한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대북전력 지원이 북한의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은 동서독 통일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 서독이 소련에서 천연가스를 싼 값으로 수입하려 했을 때, 서독에서도 적대국가인 소련으로부터 사 올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가 만만찮았다.
그러나 서독은 천연가스를 통한 소련과의 경제적 보완관계가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론자들을 설득시켰다. 이후 서독이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소련을 상대로 통일과정을 협상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는 남북경협문제도 한반도 경제공동체 내지는 동북아공동체 형성이라는 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협차원에서 대북 전력지원은 경쟁력없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대북 진출을 활성화 할 수 있다. 또 남북경제관계의 보완성 내지는 호혜성을 높일 수도 있다.
남한이 북한에 발전소를 공동건설. 운영해 북한에 전력도 공급하고, 남한의 수요집중시기에 남한으로 송전도 할 수 있다면, 남한은 발전소의 입지해결, 피크 수요용 발전소투자비 절감, 발전소 이용 효율향상 등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지금까지 남북간에 합의한 31개 사항중 25개가 남한측이 제안했던 것인 만큼 남한이 북에 끌려 다닌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뿐만 아니라 대북 전력공급과 남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직접 관련이 없다.
6ㆍ15 공동선언 이후 불과 6개월만에 다방면에서 남북관계가 착실하게 발전되고 있다.
대북전력지원도 경협의 일환이다. 90년대 이후 현재 남북관계는 완전히 비대칭관계이다. GNP는 27 대 1, 국방비 지출비는 5대 1, 교역량 180 대 1로 남한이 앞선다.
이러한 시점에 아직도 북한의 전쟁 도발 운운하면서 대북지원을 군사력 증강차원에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개성공단을 남북이 함께 건설하려면 전력지원을 비롯한 많은 사회간접자본이 설치돼야한다.
전력공급을 군사적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안되고, 동북아에너지협의체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전력망 연계는 남북에너지협력을 촉진시키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전력망 연계사업은 정부가 나서지 말고 한국 민간기업과 외국투자기업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민간송전회사를 선정한 다음 전력망 건설 및 계통운영을 맡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미군정기에 남한에 전력이 부족하자 북한이 남한에 전력을 지원한 사실을 잘 기억했으면 한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반대] 북 평화의지 검증없이 전력지원 위험
미 외교협의회 선임 연구원인 로버트 매닝은 "북한에 대한 '공짜 선심'외교정책은 빨리 끝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계속해서 공짜 선심에 맛들일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변화와 개혁이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이 요구한 전력공급도 마찬가지다. 얘기의 알맹이는 이번에도 우리 더러 공짜 선심을 쓰라는 것이다.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200만㎾의 전력이 필요하지만 그 가운데서 급한대로 50만㎾의 전력공급을 요구했다고 한다.
북한은 박재규장관이 난색을 표명하자 이른바 '주적론(主敵論)'을 들먹이며 회담을 지연시켰다고 전한다.
심지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 운운 해가며 압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까지의 북측 행태로 미루어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보다 더 심한 얘기까지 들었을 성 싶다.
그러나 북한전력 지원문제는 성격상 비료나 식량 지원과 절대 같지가 않다. 전력은 에너지인 동시에 주요 전략물자다. 군수용으로 전용될 때 그 화는 곧바로 우리가 입게 돼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가 지원하는 전력이 순전히 민수용으로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민수 군수 구분도 모호한데다 검증장치 역시 없다. 그런 가운데 과연 무얼 믿고 북에 전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가.
남북정상회담 6개월이 지나도록 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고 있다.
북측은 자기들이 "더 많이 양보하고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로는 아니올시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를 지원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북 전력지원 여부는 김정일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선택이 대남 적화전략 포기와 같은 구조적긍정적 변화를 수반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풀린 뒤에 결정될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의문이 풀리더라도 대북 전력지원은 10.5%에 불과한 우리 전력 예비공급률과 송 배전설비 교체 등에 소요될 어마어마한 경제적 부담을 충분히 고려한 뒤 여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이 경우에도 대북 비료나 식량지원과 달리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또한 국회 논의를 거쳐 투명성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제4항에서 민족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언급하고 있다. 민족경제는 남측의 공짜 선심만으로는 균형있는 발전이 어렵다.
북측이 우리에게 전력지원 같은 요구를 하려면 동시에 군사적 신뢰구축 등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대북 지원과 관련, 흔히들 통일 이전 서독의 대 동독 경제 지원을 거론하지만 사실은 서독이 엄격히 상호주의 방식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장수근 한국자유총연맹 연구실장
■네티즌 나도 한마디
한국i닷컴(hankooki.com) 토론마당에 참여한 네티즌 사이에는 반대의견이 더 많았다. 남한 사정도 어려운데 북에 전력을 제공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향후 10년간의 경제성장률과 전력예비율을 정하고 발전소는 몇기를 건설하며 그 비용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 후 전력공급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섣불리 판단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농구선수
북한에 무료로 줄 전력이 남아돈다면 먼저 전기료를 내지 못해 이불 하나로 추위와 싸우는 영세민과 수출공단 및 군부대에 무료로 전력을 공급하고 그래도 남는다면 싼 가격에 도와줘라. / 애국자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면, 그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잘 살아보겠다고, 잘 먹어 보겠다고 문 열고 나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 화해자
여유가 있으면 당연히 공급해주어야 한다. 같은 민족인데 무엇이 아까운가. / 이상인
■"지금은 여력있으나 앞으로가 문제"
과연 남한에 북한을 도와줄 만한 전력 여력이 있느냐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1999년 현재 남한의 총발전설비용량은 4,698만㎾이고 전력 예비율은 10~15% 선이다.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는 여름에는 발전소를 풀가동,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예비율이 비슷하다. 한전 관계자는 이를 근거로 "200만㎾는 어려워도 50만㎾ 정도는 보낼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력 사용량이 해마다 10% 가량 늘어난다는 사실. 지금은 여유가 있지만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지 않으면 전력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전력을 공급해도 관련 시설 건설비를 누가 부담하느냐가 문제다. 북측에 송배전시설을 지어주면 3,300억원, 발전소를 지어주면 5,000억원, 남한에 별도의 발전소를 지으면 1조3,000억원 정도가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한편 99년 현재 북한의 총발전설비용량은 739만㎾로 남한의 16% 수준이며 그나마 발전설비의 73%가 보수가 필요할 정도로 낙후돼있다.
박광현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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