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파크,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싱가포르의 IT육성 정책을 한눈에 알게 하는 곳이 바로 꿈의 첨단산업 단지인 '사이언스 파크(Science Park)'이다.
싱가포르 남서쪽 주롱반도 한 켠에 자리잡은 사이언스 파크에 들어서면 우선 '제대로 찾아온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7만여 평에 달하는 공간전체가 첨단산업 단지라기 보다는 관광을 위해 꾸며놓은 아름다운 열대정원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깨끗한 도로 좌우로 야자수 등 열대수종이 늘어서 있고 넓은 잔디밭 사이로 물이 흐른다. 이 열대정원 곳곳에 초현대식 디자인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흩어져 있다. 누구라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1,2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이언스 파크의 지리 안내판을 보면 다시 한번 놀란다. 공동연구소, 법률회사, 비즈니스 스쿨, 회계ㆍ경영 컨설팅 센터, 스포츠 센터, 벤처캐피탈 소개소, 식당, 탁아소, 병원, 은행, 편의점, 영화관, 렌터카.. 심지어 입주 연구소나 기업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주는 건물 리노베이션 서비스까지 있다.
모든 것을 단지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자급자족형 타운이자 연구-투자유치-창업-경영관리가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가 아시아 첨단기술의 메카를 목표로 개발해 1982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사이언스 파크에는 현재 엑슨, 실리콘 그래픽스, 소니 등 다국적기업과 싱가포르 첨단벤처 등 300여개사가 주로 연구ㆍ개발(R&D)에 몰두하고 있다.
역시 IT업종이 절반을 넘는다. 가장 큰 자랑은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 등 굴지의 기업과 연계된 벤처창업보육소인 이노베이션 센터다.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전자상거래와 이동전화를 연결하는 핵심기술을 개발해 시티뱅크 등과 사업제휴를 맺은 이비즈(EBIZ)사 파멜라 림 대표는 "이노베이션 센터와 사이언스 파크는 많은 기업과 연구기관과 함께 협력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1966년 아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통신기업 전용의 R&D센터인 텔레테크 파크도 사이언스 파크의 명물이다.
사이언스 파크에는 주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전문 인력 7,000여명이 활약하고 있는데 중국인 인도인 말레이시아인 미국인 유럽인 등 각양각색이다.이들끼리의 각종 동호회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일상적인 교류 속에서 연구ㆍ개발의 난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능을 가진 젊은 인재들에게 이제는 한 나라에 대한 충성심만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시대이니 만큼 인재가 머물 공간과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싱가포르의 인재 육성 및 유치 정책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인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모두 29억 달러를 투입해 사이언스 파크와 주변의 국립 싱가포르 대학, 난양 공대를 하나로 묶는 '사이언스 허브(Science Hub)'도 조성할 계획이다.
사이언스 파크의 운영ㆍ관리를 맡고 있는 아카시아 랜드의 총 시악 칭 대표는 "우리는 인재들을 위해 골프장까지 만들었다"며 "끝없는 지원과 서비스를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신윤석기자 ysshin@hk.co.kr
■세계를 겨냥한 '교육열'
싱가포르가 IT 등 첨단분야의 중심지로 성공하는데는 교육의 힘이 크다.
국제 교육성취도 평가협회(IEA) 주최로 미국 영국 일본 한국 대만 등 38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학ㆍ과학 성취도 분석에서 올해 싱가포르는 1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의 교육열과 입시전쟁은 유명하다. 재수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국립 싱가포르 대학에 낙방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미국ㆍ영국ㆍ호주의 대학 모집광고가 입시철 뒤에는 싱가포르 신문에 널리 실릴 정도다.
이미 각급 학교에 초고속정보통신망을 통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2002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입시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A-level'로 불리우는 대학입시를 ▦사고력 ▦정보기술 ▦창조력과 독자적 학습 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전체 시험이 단순한 사실암기 문항에서 자료를 제공하고 가치판단과 비판적 사고가 담긴 긴 에세이를 쓰는 식으로 바뀐다.
이미 영어가 공용어이고 입시 문제를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출제하고 채점하고 있지만, 추가로 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를 싱가포르의 지원대학에서 치러야만 한다. 미국 중심의 국제화에 대한 적응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생물 과목에 생명공학과 환경생물학을 추가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21세기를 겨냥해 새로운 학문 분야를 체계화시키겠다는 의미다. 화학에는 열역학이 새 선택과목으로 추가됐다. 또 컴퓨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 지도 사진 표 그래프 등을 문제에 활용하게 된다.
학생들의 공부부담이 너무 늘어난다는 학부모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지만, 싱가포르 교육부는 학생들을 지식기반경제에 대비시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터 치 힌 교육부 장관은 "학생들이 이런 시험을 치르지 않고는 앞으로 살아가기 힘들다"고 강조하고 있다.
■IT를 넘어 BT로 간다
싱가포르에서 요즘 새로운 화두는 사실 IT 보다도 BT(생명기술)이다.
이미 1987년 국립 싱가포르 대학에 분자세포ㆍ생물학연구소(IMCB)를 설립해 연구중심으로 키워왔고, 1988년 국가 바이오 테크놀로지 계획위원회를 꾸렸다.
1993년에는 IMCB 산하에 영국 글락소 웰컴사와 손잡고 자연제품연구센터를 발족해 아시아 전체의 생물다양성 자원 정보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IMCB를 '아시아ㆍ태평양 생명과학 연구소'로 키운다는 포부다. IMCB는 미국 영국 등의 유력한 게놈 연구소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복어의 게놈 지도 완성에 근접해 있는 수준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6년에는 역시 국립 싱가포르 대학에 바이오정보공학 센터(Bioinfomatics Center)를 세워 IT와 BT의 융합ㆍ활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시아의 생물 및 유전자자원의 상업적 이용에 확실한 우위에 서겠다는 목표로 싱가포르 정부는 2,000년에만 BT 분야에 70억 달러를 퍼부었다. 지난 5일 사이언스 파크에서 정부 후원으로 열린 일본의 BT 관련 산업 정보 설명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BT 분야에 대한 무리한 비용지출이란 지적도 있다.
전자ㆍIT, 석유화학, 금융에 이어 BT를 21세기 싱가포르의 4대 전략 분야로 보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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