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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메이플라워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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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메이플라워號

입력
200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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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12월21일 102명의 영국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아메리카의 매사추세츠 연안에 도착했다.이들은 그 해 9월16일 영국 남서단 데번의 항구 도시 플리머스를 출발했었다. 고향을 잊을 수 없었던 이 이주민들은 자신들이 내착한 '신세계'의 이 새로운 정착지에도 플리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이 곳에 뉴잉글랜드 최초의 백인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주자들 가운데 성인 남자 전원은 플리머스에 상륙하기 전에 선실에서 자주적 식민지 정부를 수립하고 그 정부를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메이플라워 서약서'를 체결했는데, 이 청교도적 사회계약은 플리머스 식민지의 기본법이 되었고, 그 이후 미국의 정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메이플라워호는 이듬해 봄까지 플리머스항에 머물러 있다가 4월5일 런던으로 되돌아갔다.

매사추세츠에 정착한 102명의 청교도 가운데 35명은 그보다 얼마 전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레이덴으로 이주했던 청교도 급진파였다. 이들은 완전한 종교적 자유와 더 풍요로운 삶을 찾아 아예 대서양을 건너 신세계를 찾았다. 이들이 초석을 놓은 미국 민주주의는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서 조금 기우뚱거린 바 있다.

이 첫 정착민들은 처음에는 '올드 카머스'라고 불렸다가 얼마 뒤에는 '포어파더스'라고 불렸다. 지금처럼 '필그림 파더스(순례시조ㆍ巡禮始祖)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들이 도착한 지 2세기 후의 일이다.

1820년에 있었던 플리머스 도착 200주년 기념식에서 저명한 변호사이자 웅변가 대니얼 웹스터가 이들을 '필그림 파더스'라고 부른 뒤로 이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미국 플리머스에는 필그림 파더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근처에 메이플라워호의 실물 모형이 있다. 고종석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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