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청소년이 '친구 같은 아빠'를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날, 나는 자못 여유가 있었다.아마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자신 있지.' 며칠 후, 나는 내가 실제로 그런 아빠임을 실증해 보이기로 마음을 먹고, 하루 휴가를 얻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과 동물원에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놀이터에서 그네도 밀어줄 생각이었다.
평일 오후의 예상치 못한 나들이에 아이들은 흥분할 것이고, 모처럼의 휴식에 아내는 감격할 것이 분명했다.
큰 딸아이 입에서 문제의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빠, 난 5시에 훈이랑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훈이는 새로 옮긴 유치원에서 사귄 남자친구였다.
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일단 동물원에만 가면, 코끼리열차에 백두산 호랑이에 돌고래 쇼에, 그까짓 약속쯤 금방 잊어버리겠지.
그리고 이 아빠만큼 재미있게 놀아 줄 친구가 또 있을라구..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집을 나선 딸아이는 동물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간을 묻기 시작했고, 훈이를 못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조바심을 냈다.
결국 우리는 호랑이고 뭐고 다 놔두고 큰 딸아이 데이트(?)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문제의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딸아이는 생기가 돌았고, 나는 그만 맥이 풀렸다.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그 아이가 뭐가 그리 좋은지 '이보다 더 즐거울 순 없다'는 표정으로 뛰어 노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외출이라면 초상집에 가는 일 조차도 신나 하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그다지도 친구가 없었던가.. 친구 같지는 않았지만 한 마디 말씀에도 힘이 실렸던 아버지가 그리웠고, 여섯 살 나이에 벌써 부모로부터도 침해받기 싫은 사생활이 생긴 딸아이가 부러웠다.
그리고 아무리 '친구 같은 부모'라도 부모는 부모일 뿐, 친구 자체가 되어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보았다.
/이호준ㆍ한국청소년상담원 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