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감자(減資) 책임' 경고로 정책 실패에 대한 문책 여부가 또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들에 대한 문책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여 '실패한 정책'에 대한 면죄부가 또다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특히 환란, 대우차ㆍ한보철강 매각실패 때마다 정책실패의 책임문제가 제기됐지만 유야무야 넘어간 것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 다시 문책과 함께 감자 대책을 지시한 것은 현실성이 결여된 정치적인 언급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6개 은행장 등 은행 경영진을 물갈이하고, 부실책임이 드러날 경우 민ㆍ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해 은행 경영진만 애꿎은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감자정책 주역은 누구
우선 감자조치와 직접 관련된 정책 당국자는 지난 5월 "감자는 없다"고 약속한 이헌재(李憲宰) 전 재경부 장관과 7개월만에 이를 뒤집고 완전감자를 결정한 진념(陳稔) 재경부 장관,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 그러나 1998년 공적자금 64조원 조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적자금을 집행, 관리해온 정부 당국자는 한두명이 아니다.
이규성(李揆成) 강봉균(康奉均) 전 재경부장관과 이용근(李容根) 전 금감위원장은 물론 차관급, 실무 국장급까지 관련자는 더욱 늘어난다.
▲'정책 실패' 문책 어렵다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등 과거 경제팀은 이미 현직에서 물러나 있다. 이 전 장관의 발언도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문책까지 하긴 힘들다.
당시에는 추가 공적자금 조성은 생각지도 않던 일이며, 올 하반기들어 대우차 매각 실패 등 악재가 겹치면서 경제 여건과 정책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발언에 얽매여 상황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직무유기라는 정부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더구나 97년 환란 당시 강경식 부총리겸 재경원장관, 김인호 경제수석에 대한 재판 결과 "실패한 정책은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다"란 판결이 나왔다.
또 김 대통령이 한보철강ㆍ대우차 매각실패 책임을 묻도록 지시, '시늉만 내는 문책'으로 일단락된 것도 불과 두달전 일. 여론이 안 좋을 때마다 대통령이 불쑥 실효성도 없는 문책을 지시, 정부가 이를 거부할 수도, 따를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애꿎은 은행장만 희생양 되나
결국 정부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6개 은행 경영진을 경질 또는 문책하는 선에서 감자 파장을 수습할 전망이다. 그러나 여론의 지탄을 받는 정부가 은행장을 문책할 경우 "누가 누구를 단죄하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은행장들이 부실을 허위 보고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명백한 과오가 없다면 이들을 문책하기도 힘들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6개 은행 경영진의 물갈이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만약 은행 경영진을 일방적으로 문책하면 앞으로 누가 책임지고 일하겠느냐"며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안전한 국공채에만 투자, 기업금융을 마비시키는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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