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는 '다수 세력' 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들이 거론된다.소수 여당으로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을 포함한 정계개편론도 그중 하나이다.
민주당 서영훈 전 대표가 지난 8일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에게 합당을 제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 대표가 "합당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운을 떼자 김 대행은 "합당의 합자도 꺼내지 말자"고 대답했다고 한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서 대표가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사견을 꺼냈을 것"이라며 합당설 파문을 진화하면서도 "우리가 자민련과의 통합을 희망하는 것이야 이미 알려진 얘기이며 문제의 핵심은 자민련의 수용 여부"라고 말했다. 김중권 대표는 "합당은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절차를 거쳐 공감대가 형성돼야 논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단순한 양당 통합을 추진할 경우 자민련 일부 의원들이 이탈하면 오히려 낭패"라며 "내년 초 개헌 문제와 연관시켜 큰 틀의 개편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주변에선 2~3가지의 정계개편론이 회자된다. 우선 민주당ㆍ자민련의 합당을 기본축으로 하고 민국당, 한국신당 등 군소정당 및 한나라당 일부 의원을 포괄해 140석 이상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DJP 연합'에다 김영삼 전대통령 중심의 상도동 세력을 합치는 '3김 연합론'도 나온다.
3김씨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지역화합 및 민주화ㆍ근대화 완성'이란 슬로건을 내걸 경우 대개편이 가능하다는 발상이다. 민주당과 상도동계의 통합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대연합론'도 거론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인터뷰에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만나 자민련과의 관계 재조정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힌 것이 합당 논의 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해석도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자민련 "合자도 꺼내지 말라"
자민련은 20일 민주당에서 합당론이 불거지자 당무회의에서 합당은 전혀 생각한 적도 없다"고 공식 부인하는 등 서둘러 방패막이를 쳤다.
지난 8일 민주당 서영훈 전대표로부터 합당 제의를 받은 당사자인 김종호 총재대행은 처음엔 제의를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 "서 전대표가 사견임을 전제로 얘기를 꺼내길래 '合(합)자도 꺼내지 말자.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이 왜 (대표를) 그만 둔 분의 말을 통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매우 불쾌하다"고 민주당에 서운함도 표시했다.
이날 열린 당무회의에서 당무위원들은 "합당은 생각한 적도 없고 말도 안된다"며 반대론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러나 정작 합당론의 키를 쥔 김종필 명예총재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측근들도 입을 닫았다.
당 주변에서는 연내 교섭단체요건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내년 초 DJP회동에서 합당문제가 거론돼 어떤 식이든 결론이 날 것이라 얘기가 파다하다.
당의 한 중진은 "청와대 한광옥 비서실장이 김 명예총재를 빈번히 만나 합당 등 야당의 협력강화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김 명예총재는 당내 반 민주당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위해서라도 '여당이 먼저 국회법 개정으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한나라 "김중권식 野흔들기냐"
한나라당은 민주-자민 합당론과 여권 다수세력 구축론이 김중권 대표 체제 출범과 맞물려 불거진 사실에 주목한다.
합당론이나 다수세력 구축론이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 정권 초기 야당 흔들기 작업의 총괄 지휘관으로 지목된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당의 새 얼굴로 지명된 시점에 재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합당이나 다수세력 구축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냉소적이다. 여권이 다수세력이 되기 위해선 한나라당을 제외한 제 정파를 모조리 끌어 모아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뿐더러, 당장 자민련 내에서 3~4명의 이탈 세력만 나와도 시나리오의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는 판단에서다.
한 핵심 당직자는 "여당 입장에서야 다수당만 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지 않겠느냐"면서 "그렇지만 가뜩이나 갈팡질팡을 거듭하고 있는 민주당과 여권이 무슨 능력으로 그 같은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나라당은 사전 쐐기박기를 통한 싹 자르기에 나섰다. 권철현 대변인은 "집권 초기 여권 동진 정책의 중심이었던 김중권 대표는 말로만 상생의 정치를 떠들게 아니라 그만한 믿음을 줘야 한다"면서 "의원 빼가기 등 야당파괴 공작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침을 놓았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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