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은행의 감자(減資)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서면결의에 따라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이 6개 은행의 감자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소액주주 피해와 공적자금 증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졌다.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보면 국장급보다는 상급자가 발표할 만 한데 모두들 뜨거운 감자를 피해 숨어버렸다.
부실은행에 대한 감자는 더 이상 없다던 5월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의 장담은 헛소리가 되고 말았다. 경제정책 최고책임자의 말만 믿고 은행주를 사들인 투자자들과 허리띠를 졸라매고 우리사주에 투자했던 은행원들, 그리고 지역은행 살리기에 가산을 털어 넣었던 지역주민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소액주주에 한해서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한다고 하나 투자원금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금액밖에 건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번 감자대상으로는 은행경영평가위원회의 부실판정을 받았던 한빛, 평화, 제주, 광주, 경남은행뿐만 아니라 정부가 지분 전액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은행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은행은 감자절차 없이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정부지분율에 변동이 없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9월말 기준의 3분기 경영공시에서 BIS 자기자본비율을 7.25%로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러나 두달여 만에 자본이 완전 잠식된 것으로 판정하여 전액 감자하도록 명령한데는 다른 뜻이 숨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감자대상 6개 은행에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서울은행 4조 8,000억원을 포함하여 8조 3,000억원이나 된다. 새로 조성된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전에 진념 경제팀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이 공(空)자금으로 증발해 버렸음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공적자금 109조원 중에서 예금대지급에 사용된 금액은 이미 회수불능 상태이며 은행에 출자금으로 투입된 금액중에서 일부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이번 감자조치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은행 경영을 담당했던 임직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던 공직자들의 책임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의 책임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외국인투자자와 소액투자자의 법정투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완전감자 명령의 근거인 자본잠식상태도 정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부실판정을 받은 5개 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해 전액 감자가 이루어짐에 따라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의 방향이 분명해 졌다. 경영책임을 묻기 어려운 소액주주들 조차 투자원금의 대부분을 날려버린 상황에서 은행 임직원들도 고통을 부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은행의 부실은 소홀한 채권관리뿐만 아니라 과다한 점포망과 인력도 원인이 되고 있다.
지방은행은 우선 건실한 은행에 자산, 부채 인수방식으로 합병을 추진해야 한다. 합병이 여의치 않은 지방은행은 한빛은행과 평화은행은 물론 서울은행까지 포함시키는 하나의 지주회사로 묶고 지주회사 전체의 입장에서 과잉 점포망을 과감히 통폐합해야 할 것이다.
이번 완전감자조치는 정부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금융노련은 지방은행과 합병산통을 겪고있는 주택런뭐括뵉敾~ 참가하는 대규모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은행파업은 국민의 분노만 유발할 것이고 특히 외국계 은행이 파업은행에서 이탈될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결정은 신중하게 하되 결정된 정책은 단호하게 추진하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충당될 공적자금이 더 이상 낭비된다면 국민의 분노를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금융구조조정은 뜨거운 감자이기는 하지만 우리경제의 사활이 걸린 피할 수 없는 긴박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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