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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칼럼] 대통령의 順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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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칼럼] 대통령의 順命

입력
200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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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한문을 쓰지 않는 우리 신문에 '순명(順命)'이란 예스러운 한자 제목이 나왔다.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의 사퇴선언문에 쓰인 말이다. 문맥으로 보아 "천명에 순응함"이란 뜻이다. 그 한 마디에서 만감(萬感)이 교차하는 한 정치인의 심경을 읽을 수가 있을 것도 같다.그러나 그 사퇴선언문을 읽으며 처음 떠 올린 것은, 그의 사퇴가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大選)승리 3주년(12월8일) 바로 전날이라는 시기적인 암합(暗合)이다.

3년전 대선 무렵, 그는 한보(韓寶) 사건에 연루된 형사피고인 신세였다. 구속 10개월 만의 병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대선 득표상황을 병실 텔레비젼으로 지켜 보아야 했다. 그 소감을 그는, '참 눈물을 많이 흘렸다. 가슴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고 술회했었다.

그 한 달 뒤, 그는 석방이 됐고, 8월에 사면을 받아, 그해(97년) 12월 정계에 복귀했다.

그 직후인 12월18일 아침 청와대에서는 수평적 정권교체 1주년 기념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청와대 박지원 공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지난 1년 사이) 대통령께서는 부도 직전에 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국민적 참여와 애국심, 대통령의 확고한 리더쉽에 따른 것이다. .이제 정치만 개혁되고 안정된다면, 우리 사회의 안정속에서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가히 의기충천(意氣衝天)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무슨 기념식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청와대 공보수석의 브리핑(14일)에는 이런 말이 보인다.

"최근 대통령의 언행일치(言行一致)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일부 언론이 대통령에게 국회파행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으나, .일부 언론은 또 대통령이 모든 것을 혼자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일부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는 내용의 브리핑이지만, 사못 방어적인 그 어투에서 요즘 위기상황의 일단을 읽을 수가 있다. 여론의 화살이 정책과 그 집행과정을 넘어, 곧 바로 대통령의 리더쉽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3년이란 시간의 무게다. '순명'을 말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주인도 비슷한 감회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집권 3년이 지난 국민의 정부는 지금의 위기 탓을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다.

지금까지처럼 문제를 전(前)정부가 저지른 일로 덮어 씌운다면, 그것은 우스개나 다름 없다. 개혁의 지체를 기득권세력 탓으로 돌린다면, 지금의 기득권세력이 누구더냐는 반문이 나올 것같다.

총선을 거치고도 야당의 발목 잡기를 탓한다면, 거대 야당을 만들어 낸 총선민의를 거스르는 결과가 될 판이다. 일부언론의 편파보도를 탓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시정(市井)의 소리는 그 언론보다 다급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남은 길은 '내 탓이요'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리더십에까지 회의어린 눈총이 쏠리고 있다면,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 결단은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 요체는 정치력 이해를 떠난 개혁의지의 재천명은 물론, 정권재창출, 국회 다수파 공작 따위 정치의 단식의 행태를 버리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역시 위기를 당하여 생각할 것은 '순명'이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대통령의 '순명'은 정치지도자(politician)를 넘어서 국가지도자(statesman)로 위상을 고쳐 잡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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