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이 이제야 비로소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고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었다."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본 무용평론가 문애령의 말이다. 국립발레단은 20년이 넘게 매년 연말마다 이 작품을 공연했지만, 그동안의 것은 단편 단편을 연결한 듯 통일감이 떨어지고 완성도가 미흡했다.
그러나 올해 처음 선보인 러시아의 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의 '호두까기 인형'은 확 달라진 수준 높은 것이었다.
그리가로비치는 마임으로 처리되던 부분까지 전부 발레 동작으로 바꿨다. 그 결과 춤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기교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동작의 연속이었다.
하도 힘들어서 단원 중 한 명이 연습 중 과로로 쓰러져 앰뷸런스 신세를 졌을 정도다. 두 달간 하루 아홉 시간씩 맹훈련을 하고, 그리가로비치의 한 달간 직접 지도를 받은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은 이 어려운 춤들을 잘 소화해냈다.
이만한 작품을 해낸 기량과 의지라면, 국립발레단의 눈부신 도약을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호두까기 인형'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무대를 봐온 관객들에게, 그리가로비치는 전혀 새로운 역동적이고 웅장한 '호두까기 인형'을 선사했다. 잘 짜여진 기하학적 구도로 군무를 움직이는 안무가의 솜씨는 거장다운 것이었다.
여주인공 마리가 소녀가 아니라 처음부터 성인으로 등장해 꿈 속에서 호두까기 왕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다른 점이다.
어린이 무용수가 많이 나와 어수선하게 움직이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호두까기 인형을 연기하는 꼬마 1명 외엔 어린이가 나오지 않아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을 줬다. 여러 나라 인형의 춤도 기존 안무보다 재미있으면서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이었다.
국립발레단의 단점으로 늘 지적됐던 초라하고 허술한 의상과 무대장치도 완전히 달라졌다.
러시아에서 만들어 갖고 온 의상과 장치는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게 아름답고 효과적인 것이었다.
16일 첫 공연의 주역은 이원국과 김주원이었다. 김주원은 1막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잘 했다. 특히 이날 이원국은 힘으로 뛰는 게 아니라 마치 날아다니는 듯 가슴으로 추는 춤을 보여줘 탄성을 자아냈다.
다음날 낮 공연의 김지영도 훌륭한 춤을 보여줬다. 주역 뿐 아니라 인형을 춤춘 무용수들도 잘 했지만, 호두까기 인형을 연기한 어린이 최세나, 채지영은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으며 인기를 차지했다.
아쉬운 것은 조명과 음악이었다. 부분 조명이 부족해 무대에 그늘이 지거나 안보이는 구석이 많고, 꽃의 왈츠 장면에서는 조명이 고르지 못해 무용수들의 흰 옷이 분홍색과 흰색을 오락가락 했다.
오케스트라(최승한 지휘 코리안심포니)는 무용수 동작에 박자를 제대로 못 맞추거나 쥐왕의 등장, 크리스마스 트리가 커지는 부분 등 극적인 박진감을 살려야 할 대목에서 전혀 효과를 내지 못했고, 1막 눈송이 춤에 나오는 합창(국립합창단)도 들릴락말락 했다.
이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5일까지 계속된다. 유니버설발레단도 21~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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