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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51)이해인 수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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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51)이해인 수녀의 시

입력
200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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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시인인 이해인 수녀는 요즘 시보다 편지를 더 많이 쓴다. 얼마 전 한 대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이해인 수녀의 시를 좋아하는 데, 여자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수녀님의 편지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답장은 기대하지 않지만 혹 시간이 나면 답장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냥 넘겨 버릴 수도 있는 편지였다. 그러나 이해인 수녀는 그의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었다. 예쁜 천사 스티커를 붙여.

어쩌면 시인이자 수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인 수녀는 이제 "의도적으로 쓰는 시보다는 육화하는, 이웃과 나누는 시를 쓰고 싶다.

반드시 시가 아니어도 좋다. 편지 한 통이 기쁨이 될 수 있다면"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꺼이 시 대신 편지를 쓴다.

서울 대학로의 샘터사에서 만난 이 수녀는 그곳이 어릴 적 살던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낯설다고 했다. 2, 3개월에 한번씩 들르는 서울이지만 올 때마다 늘 분주하고 좀 불편하다.

일주일에 6시간 부산 가톨릭대 지산교정에서 겸임교수로 시를 읽어주는 시간 외에 그의 시간은 고적한 수녀원에서 하루 네 번 성무일도를 하고 묵상을 하는 기도의 시간이나 문서선교 시간으로 채워진다.

1997년 8월 수녀원 부설 유치원 교실 2개를 터서 만든 문서 선교실을 '해인 글방'이라 이름 지었다. 편지나 전화를 해오는 이들에게 위로와 위안의 선교를 해주는 것이다. 그간 쓴 편지만 2,600여통. 이중 700통 이상은 새 독자들로부터 온 것이다.

그에게 기도 시간은 시를 쓰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삶에서 떨어지는 열매가 시"라는 이 수녀는 "오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익명의 수도자로 남고, 독자로 남길 원한다"고 말한다.

이런 바람이 있기 까지 그는 먼 길을 에둘러 왔다. 1970, 80년대 그는 '인기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신을 향한 간절한 기원의 그것이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연애 편지에 쉽게 쓸 수 있는 연시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베스트셀러 시집은 평단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가장 염려했던 것은 고요하고 낮은 곳에 임해야 할 수도자의 자세가 행여나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하나의 믿음을 얻었다. 그것은 시간을 이어 꾸준히 형성되는 새로운 독자의 힘이다. 그의 첫 시집이 나올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 독자들은 여전히 이전 세대들처럼 그의 시를 읊고 옮겨 적어 편지로 보내곤 하는 것이다.

샘물처럼 세월이 지나도 줄지 않는 독자들은 그의 초기 시의 생명력에서 삶의 위안을 얻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절대 순수에 대한 풋풋하고 뜨거운 열정, 그것 때문이다.

'바람이 부네/ 내 혼(魂)에/ 불을 놓으며 부네.그대가 바람이어서/ 나도/ 바람이 되는 기쁨' ('바람의 시'중) 수도를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그렇듯 마음이 급하다.

구원의 길이 좀 더 일찍 자기 안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기 바라는 것이다. 그 초심의 갈망은 때론 바람처럼 일렁이기도 하고,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눈물'중)인 눈물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기쁨이고, 고독이고 회한이자 막막함이다.

'누군가 내 안에서/ 기침을 하고 있다/ 겨울나무처럼 쓸쓸하고/ 정직한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목 쉰 채로 / 나를 부르지만/ 나는 선뜻 대답을 못 해/ 하늘만 보는 막막함이여' ('누군가 내 안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래서 간절히 '나'를 부르는 진리와 구원의 길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우리 작은 존재들의 안타까움이다.

시는 나이를 먹지 않되, 시인은 나이가 드는 법이다. 그래서 그를 통해 나오는 시어들 역시 연륜의 세례를 피해갈 수 없다. 이 수녀는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움으로 시가 옮아간다"고 말한다. '

어느 노인의 기도' 처럼 점점 외로워지는 노인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미혼모나 그늘진 실직자의 아픔을 담기도 한다. "대신 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제 하느님의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성직자이자 시인의 기원, 그대로이다.

그는 기도를 할 때 어느 신문에서 읽은 노숙자나 실직자,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잊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진짜 아프기 때문이다. 대속이 예수의 몫이었다면, 이 세상 모든 가여운 이들의 아픔을 대신 느끼는 것은 성직자의 일일지도 모른다.

성탄절이 되면 그는 더 분주하다. 19일 그는 조계사 불교청년회 초청으로 강연회를 가졌다.

그러나 도시의 번잡함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에게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캐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선(善)도, 사랑도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런 싸움을 하려면 자기만의 비결이 있어야 한다.

컴퓨터 안의 '즐겨 찾기'나 마음의 비밀번호와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격언이나 성서의 한 구절, 혹은 친구의 덕담일 수도 있다."

그는 '마음의 성전'을 권한다. 물리적으로 안되어도 마음 속으로 수도자가 되어야 하는 데, 눈감고 명상하는 시간만 갖는 것만으로 성전이 지어진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땅까지/ 참으로 먼 길을 걸어 내려/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사랑으로 좁히러 오셨습니다/ 예수 아기시여/./ 천 년이 지나고 또 천년이 지나도록/ 당신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오시건만/ 당신을 외롭게 만든 건/ 정작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누우실 자리 하나 마련 못한 건/ 바로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아아, 주 예수 그리스도 엠마누엘이여/ 사랑이신 당신 앞에/ 천지가 잠을 깨는 밤/ 당신을 닮고 싶은 영혼들이/ 피리처럼 떨려 오는 아름다운 밤이여'(성탄시 '구유 앞에서')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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