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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순서 逆으로 '반전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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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순서 逆으로 '반전묘미'

입력
200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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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는 두 갈래다. 살 속으로 파고 드는 예리한 칼날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더 많은 소름을 돋게 하는데 주력하는 영화가 있다. 또 끊임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과 감독의 지능을 비교해가도록 지적 경쟁심을 유발해 관객을 초조하게 만드는 스릴러가 나머지 하나이다.이런 분류법을 적용해 보면 영화 '자카르타'(감독 정초신)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관객을 속이는 영화'를 표방한 '자카르타'는 세 팀의 은행강도 이야기이다.

블루(임창정), 레드(진희경), 화이트(김세준)가 오광투자금융을 털기로 한 것은 은행 부사장인 사현(윤다훈)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도박 빚에 시달리고 있는 그는 300만 달러의 현금이 들어오는 날인 화요일 오전을 D데이로 지목, 이들에게 은행 강도를 제의한 것이다. 은행 직원 은아(이재은)는 사현의 정부로 사현과 강도 짓을 공모한다.

그러나 "세계 어떤 은행 강도도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은행은 턴 경우는 없다. 때문에 우리는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해룡(김상중)과 두산(박준규) 역시 같은 시각, 경찰로 위장해 은행에 강도 짓을 하러 들어오고, 마침 사전 각본에 의해 블루를 잡아 끌고 나오는 사현과 마주치게 된다.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경찰로 위장한 강도에 넘겨지고, 이들은 창고에 갇히게 된다. 은행강도였던 두 사람은 이제 남치범으로 변한다.

얼핏 단순한 강도 영화 같지만 전반 40분이 지난 후 영화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들의 동기와 사건의 진상을 이야기한다. 관객은 영화 후반부 드러나는 '정답표'를 보고 나서야 앞 부분의 문제를 깨닫게 된다.

이것은 영화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살려달라 애걸복걸하던 블루가 "야 니들 어디 소속이야. 내 몸 털끝 하나라도 다치면 너흰 다 죽어"라고 큰소리 치다 해룡이 난사한 총에 죽어가기까지 영화 스토리는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범죄 스릴러에 약간의 세련되지 못한 유머를 섞은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진행되는 영화가 제시하는 해답을 보면서 앞부분의 문제를 '복기(復棋)'하는 것은 별로 쉽지 않다. 영화 속 지능게임의 골자는 해룡과 두산, 사현과 은아, 블루 레드 화이트, 이 세 패거리가 두 패거리로 이합집산하는 과정의 법칙을 밝혀내는 것이나 과정이 지루하다.

임창정과 박준규의 연기가 안정적인 반면, 김상중의 연기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고, 김세준의 코믹 연기는 영화의 초점을 흐릴만큼 산만하다. '세 남자'로 스타가 된 윤다훈은 영화에서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연기가 평작에 그친 것은 배우의 영화가 아니라 감독의 영화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한데, 그렇게 보기에도 캐릭터의 매력은 매우 약하다.

■'자카르타' 감독 정초신 인터뷰

" '펄프 픽션'에 '유주얼 서스펙트' 를 합쳐 '소나티네'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한국에선 이런 말이 영화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말이다."

뉴욕대 영화매체학 석사, 광고대행사 PD, '귀천도' '퇴마록' 프로듀서,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 정초신(38) 감독은 데뷔작 '자카르타'로 관객에게 두뇌싸움을 걸어왔다. "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한국영화의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시간의 순서를 거꾸로 배치함으로써 반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극 구조를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제작비 17억원의 '자카르타'는 제작기간 56일(촬영 20회)로 최단기간 기록을 갖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53일) 기록에 버금간다.

"영화를 빨리 찍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96년 시나리오 완성 이후 '올 콘티'만 4번 그렸을 정도로 그림이 충분히 마련됐었다"고 말한다.

관객이 "영화 사이 사이의 힌트를 주목해 달라"는 감독의 주문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똑똑한 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의 꿈이 이뤄질 수도 있겠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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