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모든 것이 하늘의 뜻으로 통했다. 풍년이 들어도 하늘의 뜻이요, 천재지변도 하늘이 노한 탓이라 믿었다.건조한 봄철 중국 동북부 사막에서 날아오는 황사로 막대한 피해가 있을 때 임금과 위정자들은 정치를 잘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자성하고 근신하였다. 황사로 보이는 자연의 이변은 신라나 고구려 때부터 흙비(土雨) 흙눈(赤雪) 흙안개(黃霧) 피비(黃雨) 같은 표현으로 기록되었다.
■고려 현종 때는 나흘동안 온 누리를 뒤덮은 흙안개 때문에 역질이 창궐해 맥없이 죽어가는 백성이 속출했다. 괴승 신돈(辛旽)이 국정을 농단하던 공민왕 때는 눈을 뜨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황사가 무려 일주일동안 계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인조 때는 피비가 내려 풀잎까지 붉게 물들었다고 했다. 이런 이변이 있을 때 마다 정치가 잘못된 때문이라는 쑥덕거림이 항간에 시끄러워 위정자들은 옥문을 열거나 제도를 개혁했다.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게 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뭄이란 3~4년에 한번씩은 오게 마련인 주기적인 자연재해련만, 그 때 마다 왕과 위정자들은 옷깃을 여미고 하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가뭄이 심해지면 임금이 몸소 하늘에 제사를 집전하였다.
이때 왕은 먹고 마시는 일을 폐하고, 초가로 거처를 옮겨 일반 민중과 고통을 같이 나누기도 하였다.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을 사죄하고 민심을 수습하려는 제스처였다.
■그런 천재를 위정자 잘못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국정혼란에 대한 민심은 옛날과 다를 바 없다. 권력자 주변의 일을 내집 일처럼 자세히 알게 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민심을 천심으로 알겠다는 다짐이 귓가에 생생할수록 실망이 큰 법이다. 민심을 의식해 가신 한 사람과 여당 대표를 물리쳤지만, 이제 됐다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는 한 고개 끄덕일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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