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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동성동본이라 안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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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동성동본이라 안된다구요?

입력
2000.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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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가까운' 사이일땐 유전적으로 나쁘지 않아얼마 전 우리 모두를 TV 화면에 붙들어맸던 드라마 '가을동화'는 서로 피를 나눈 남매는 아니었어도 어려서 같은 집에서 자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조금은 믿기 어려운 얘기를 그렸다.

물론 실화가 아니었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생물학자인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상당 부분을 서로 떨어져 살았고 그리워할 수 밖에 없도록 억지로 떼어놓은 사이였다. 충분히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을동화' 의 경우가 특수한 것임은 이스라엘의 키부츠 풍습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종종 아이들을 키부츠라고 부르는 공동시설에 맡겨 함께 기른다.

그런데 키부츠에서 자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면 어려서 함께 자란 남녀가 사랑을 느껴 결혼한 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계의 동물들에서도 잘 연구되어 있다. 포유류의 경우에는 대부분 태어난 지 1∼2년이 되면 수컷들이 고향을 떠난다. 새들의 경우는 그 반대다.

암컷들이 대부분 출가외인이 된다. 많은 동물들이 이동과정이나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 채 아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런 결정적인 불리함을 무릅쓰고 동물들이 집을 떠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근친상간을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유전적으로 지나치게 가까운 개체들끼리 번식을 하면 나쁜 유전자들끼리 만나 그 형질이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환경은 늘 변하는데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끼리만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스러져갈 가능성도 커진다. 농작물의 품종개량을 위해 자가수분을 시키는 법은 없다. 항상 다른 유전자를 끌어들인다.

벌써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였는데, 메추리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니 남매도 아니고 아주 남남도 아닌 사촌을 가장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전적으로 너무 가까운 개체와 번식을 하면 악성유전자의 발현 등 좋지 않은 점이 있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다른 개체와 번식을 해도 그나마 잘 다듬어놓은 좋은 유전자 집합을 깰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아 사촌이면 너무 가깝다는 생각에 이 연구가 사뭇 충격적이었지만 실제로 동물들은 대개 유전적으로 적당히 가까운 혹은 적당히 먼 개체들과 번식한다.

최근 네티즌들을 상대로 실시한 어느 통계에 따르면 동성동본의 혼인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70%를 넘었다. 자주 그렇듯이 세상이 법을 앞서고 있다.

나랏일을 맡고 있는 이들은 마치 동성동본의 혼인을 허락해주면 갑자기 남매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기라도 할 듯 걱정인 모양이다.

물론 법적인 족쇄가 풀리면 그런 사랑들 중의 일부는 결혼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인류 전체의 유전체계를 뒤흔들 정도는 아닐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도 자기 동생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가 그 동생이 죽자 다른 동생도 마저 죽이고 결국 로마 황제를 맞아들이지 않았던가.

최재천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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