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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벤처, 다시뛰자 / (2)초심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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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벤처, 다시뛰자 / (2)초심으로 돌아가자

입력
2000.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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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에서 有를 일구었던 도전정신 재무장하라"16일 새벽 2시 서울 테헤란 밸리 대로변 안쪽의 포털업체인 A벤처 건물. 사무실 문을 열자 불빛 아래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 직원 20여명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야전침대가 놓여있고 몇몇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일반 사무실의 대낮 풍경으로 착각할 만큼 열기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 업체뿐만이 아니다. 벤처 업체가 입주한 인근 건물 모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벤처기업이 모두 몰락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한국 벤처의 심장부인 테헤란 밸리는 여전히 '벤처 드림'을 실현하려는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다.

대기업 출신인 한 벤처 대표는 "이제야말로 벤처가 뭔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포털사이트를 개설, 벤처 업계의 명암을 고스란히 체험했다. 벤처 열풍으로 자금이 넉넉해지자 몸집불리기에만 매달렸다가 곧 이어 닥쳐온 위기에 맥없이 허물어졌다.

폐업을 결정했다가 직원들과의 합의로 내년 3월을 마지노선으로 정해놓고 지난달 서비스를 재개한 그는 "잠시나마 벤처 정신을 잃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벤처 업계에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머니 게임에만 몰두했던 지난 시기를 반성하고 위기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카드 업계 1위인 레떼닷컴은 사이트 개설이래 광고비를 단 한푼도 지출하지 않아 30억원의 펀딩자금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지난달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임직원을 50% 감원하고 사무실을 2개층에서 1개층으로 줄였다. 김경익(金京益) 대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벤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 업계의 초심 회귀 움직임은 내실을 위해서라면 체면을 가리지않는 데서도 드러난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업체 와플은 10월 테헤란 밸리에서 구로공단의 키콕스 벤처센터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윤영철(尹永哲) 대표는 "구로공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망설였지만 '어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직원들의 뜻에 따라 입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100명이 넘던 직원을 60명으로 줄인 우먼플러스 등 4개 사이트 운영업체 코스메틱랜드 최선호(崔璿鎬) 대표는 "창업 당시 집에서 쓰던 컴퓨터를 회사로 들고 오고 사채 업자에게 시달리며 IMF를 버티던 기억이 새롭다"면서 "상반기에 반짝했던 돈잔치에 휩쓸렸던 것을 반성한다"고 털어놨다.

미국계 에이전시닷컴코리아의 조민영(趙敏永) 대표는 "미국은 1980년대 경쟁력 둔화로 흥망의 기로에 섰다가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정보통신 혁명으로 세계 최대 강국으로 우뚝 섰다"면서 "국내 벤처들의 최근 움직임은 벤처산업 발전사에 의미있는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前 벤처CEO들 "이래서 파산"

테헤란 밸리를 옥죄던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은 전직 벤처 사장들. 이들은 한결같이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탄식했다.

R&D(연구 및 개발)는 소홀히 하고, 단발성 아이템으로 버티다 수익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시장성 없는 사업모델에 집착한 것이 패인이라는 고백이다. 코스닥 열풍에 편승해 투자자금을 탕진한 도덕적 해이도 실패를 맛보게 된 이유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증권정보 사이트를 9개월 만에 폐쇄한 김모(31) 사장은 코스닥에 등록하기 위해 사이트의 인지도를 높인 후 광고매출 등으로 요건만 채우는 '머니 게임'에 열중하다 좌초했다. 1,000포인트를 상회하는 주식열풍을 보고 회원 확보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착각, 수익모델 개발보다는 인터넷 공모로 모은 9억 여 원을 경품 이벤트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증권정보라는 아이템이 진입이 쉬운데다 유사 사이트간 차별도 없어 회원가입이 지지 부진하고 광고유치도 저조했다. 뒤늦게 수익이 나는 사업방향을 찾아보려 했지만 자금은 이미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그는 "처음부터 유료화 컨텐츠를 구상하는 등 수익모델 마련에 힘을 쏟았어야 했다 "며 "코스닥 등록 때까지만 버티고 이후는 알 바 아니라는 얄팍한 생각을 가졌던 것부터가 문제였던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섬유B2B 사이트 업체인 Q넷은 시장성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좌초된 경우다.

중소무역업체에서 섬유구매를 담당했던 신모(36) 사장은 기업간 전자상거래가 곧 확산될 것으로 확신하고 1998년 퇴직후 2개월간의 사이트 구축작업을 끝내자마자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전자상거래 개념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업체끼리 물밑에서 이뤄지는 구매관행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섣불리 뛰어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업을 접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발 업체들이 인터넷 상거래 붐을 타고 속속 생겨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업종의 태동기, 성장기, 경쟁심화기 등 발달단계에 따른 시장성 분석이 부족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벤처 열풍에 흥청거리다 파멸을 맛본 CEO도 있다. 도난방지 시스템개발 업체인 I사의 전모(39) 사장은 "지난해 12월 특허출원 덕에 받은 투자금을 물쓰듯 하다 생산시설 구축이 늦어 진 것이 붕괴의 조짐이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7월에 라인은 대충 구축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생산라인이 안정화하지 않고 계속 차질만 빚다 결국 지난달 사업을 포기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8월 유아교재 판매사이트로 사업을 시작한 P사의 심모(28) 사장은 유행에 휘말려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다 주력 사업까지 망쳤다. 기왕이면 뜨는 사업을 해보라는 '묻지마 투자자'들의 얘기에 생소한 분야인 리눅스 사업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배포판 제작 등에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한데다 리눅스 사업을 위해 만든 개발팀이 사이트 사업팀과 불화를 일으켰고, 주력사업의 거래처마저 떨어져 나가 결국 6월에 문을 닫았다. 심사장은 "이익이 크지 않다고 주력 사업을 버리고 전문성 없이 사업에 뛰어들어 몸집을 부풀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황종덕기자

lastrad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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