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용주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길을 더럽히는 족속들은, 길은 한번 지나가버리면 종적이 묘연하다느니, 자취가 없다느니,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느니 하면서 길을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길처럼 뚜렷한 흔적은 이 세상에 없다."
시인 유용주(40)씨는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발행)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길'은 관념적이거나 낭만적이거나 혹은 도인적인 길이 아니다. 유씨는 누구보다 절절한 '삶의 길'을 걸어온 시인이다. 그에게 길은 더 이상 뚜렷할 수가 없는 생의 흔적이다.
그의 첫 산문집은 이 흔적에 대한 기록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다짐이다. 그는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라는 말로써 그가 걸어온 길을 증언한다.
유씨는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한 뒤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과자공장 직원, 금은방 종업원, 막노동판 '시다', 농사 등 우리 사회의 온갖 밑바닥 삶을 체험한 시인이다.
우연히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시를 접하고 시작(詩作)을 하면서 1991년 등단, '가장 가벼운 짐'과 '크나큰 침묵' 등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이번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그가 시로는 다 내보이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정직하고 투명한 기록이자, 그가 꿈꾸는 문학과 세계에 대한 산문적 변주이다.
"밑바닥 헤험 속에서, 생활고와의 정직한 싸움 속에서 낳은 문학이기에 거기엔 자기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아픔으로 더 아픈 이웃을 감싸안는 사랑과 항심(恒心)과 평심(平心)의 도가 숨쉬고 있다."(평론가 임우기).
농사꾼으로 자연을 보고 느낀 단상, 어려웠던 우리 모두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 소설가 이문구 한창훈씨와 시인 박남준 이정록 송찬호씨 등 같은 길을 걷는 문인들에 대한 글에서 현장시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관념을 제거한 가식 없는 소박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감동이 있다.
농사 도중 고춧대를 뽑으면서 유씨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한 뙈기라도 땅이 있으면 뿌리고 심고 가꾸고 거름 주어 거두는 일이 사람살이의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그러니 뻣뻣하게 서 있는 놈들은 땅하고는 아예 상관 없는 족속들이 틀림없을 게다. 땅 닮은 생명들은 다 구부정하다." 그가 사람살이를 보는 눈은 이처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식의 이미 익었거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시각이 아니다.
"생명들은 다 구부정한 것"이고 "숲은 가늘고 어린 나무들부터 티눈이 부어 올라 생살 앓고 몸살 앓아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런 낮은 곳의 시각에서 그의 문학도 출발한다.
유씨는 지금까지는 자신의 문학이 "삶에 대해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자의 몸부림과 오기"였지만 이제부터는 "소외받고 못난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크고 생생한 삶의 공간이 있고 그들만의 우직하고 진솔한 삶이 썩지 않은 곳 없는 이 땅에서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된다는 생각에서 다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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