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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입력
2000.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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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랑이 전시'일념 방방곡곡.해외 찾아 헤매창경원동물원과 서울대공원에서만 37년4개월을 보낸 나는 1995년말 꼭 하고 싶었던 백두산호랑이 전시를 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남긴 채 정년퇴임을 해 야생동물과 석별의 정을 나눌 수 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호랑이가 첫 선을 보인 것은 55년 8월 17일. 하지만 백두산호랑이가 아니라 태국서 수입한 뱅골호랑이 한쌍이었다. "아, 저기 호랑이가." 그래도 사람들은 백두산이나 인왕산호랑이 보듯 신기해하며 호랑이 사(舍)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호랑이는 뱅골 호랑이보다 체구도 우람하고 당당하며 안광(眼光)이 섬섬하고 살기등등한 커다란 눈을 갖고있다. 또 장모(長毛)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아 이땅의 수호신 같은 모습이다.

그런 한국호랑이를 꼭 동물원에 전시하겠다는 일념에 호랑이를 잡았다든가 범새끼를 기증을 하겠다는 말이 있으면 강원도 심산계곡과 태백산 줄기, 지리산 오지촌을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하지만 호랑이를 직접 보지 못한 촌로들은 살쾡이를 잡아놓고 호랑이 새끼라 우기며 많은 돈을 요구했다.

준비해간 살쾡이와 호랑이 사진을 보여주면 그제서야 무상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단 한번이라도 호랑이 생포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93년 어느날, 중국의 한 민속공연단이 한국 공연을 계기로 한국호랑이 한쌍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가슴이 쾅쾅 뛰었고 곧바로 그 호랑이가 있다는 만주땅의 동북호(東北虎)사육장으로 달려갔다.

사육장에는 호랑이가 69마리나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백두산 호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녀석들은 대부분 만주 호랑이였다. 만주호랑이는 백두산호랑이보다 덩치는 크지만 용맹함은 떨어진다. 포획지, 기증자, 포획일, 포획방법 등을 적은 동물대장과 혈통서 원본의 제시를 요구했더니 관계자가 그런 서류는 사육장에는 없고 하얼빈(哈爾濱)동물원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하얼빈동물원으로부터 혈통서 사본을 팩스로 받아달라고 요구하자 그곳까지 직접 가서 받아와야 한다며 길을 떠났다. 이틀만에 혈통서가 오기는 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60~70년대 문화대혁명 기간중 호랑이 혈통서가 모두 유실됐기 때문에 그때 가져온 혈통서는 엉터리였다.

지금 서울대공원에는 93년 4월 북한 자강도 낭림군에서 생포한 백두산호랑이 암컷이 지난해부터 전시되고 있다.

평양중앙동물원과 야생동물 교류사업결과 64년만에 백두산호랑이의 포효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정만 전 서울대공원 동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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