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0년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이라는 유명한 연구서를 출간했다. 당시까지 자살은 순전히 개인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즉 세상을 비관하거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태에서 저질러지는 극단적인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그런데 뒤르켐은 개인적 요인보다 사회적 요인이 자살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가족, 지역사회, 또는 종교에 잘 통합되어 있을 때 사회규범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기 때문에 자살과 같은 극단적 행동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사회로부터 유리돼 있을 때에는 이러한 사회의 규제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자살과 같은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뒤르켐이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아노미적 자살'인데 경제발전은 먼저 이루어졌지만 도덕과 가치관의 발전은 이에 못 미치기 때문에 규범체계 자체의 혼란이 있게 되고 이러한 무규범 상태에서 개인은 매우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또는 쉽게 자살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한국사회를 흔히 압축성장의 사회라고 한다. 그만큼 경제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이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소수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던 인터넷이 이제는 국민들의 보편적인 생활도구가 됐다.
문제는 새로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 걸맞은 새로운 행동규범이 적절하게 발전하는가 여부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됐고 e메일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지구상의 어느 곳에 있는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게 됐으며 정치현안과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알릴 수 있게 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은 익명의 세계임을 악용한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곳이 되었고, 최근의 연예인 비디오 사건에서 보듯이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 그 자체에 빠져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혼돈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살 사이트'라는 그야말로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엽기적인' 홈페이지들이 등장했고 또 이에 동감을 보내는 사람들이 나타나 자살을 중개하고 실천해주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수사당국이 이를 감시하고 또 처벌함으로써 당장에 표면적으로 나타난 문제들에 대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속성을 생각할 때 공권력의 동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음란물에 대한 단속이 인터넷의 기술적인 특성상 근본적인 뿌리뽑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왜 가상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가? 현실사회가 가상의 세계만큼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혹세무민의 사교집단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현실사회가 무질서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차이가 있다면 사교집단과 달리 인터넷이 만들어 내는 가상의 세계는 과학에 기반하는 세계이고 또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세계라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과학과 인터넷을 마치 구세주인양 여기며 물량적으로 만들기만 할 뿐 그에 수반되는 행동규범을 만드는 일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비슷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동호회 형태로 묶어줌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연대성을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 자살사이트는 이것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자살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하려고 그곳을 찾게 된다고 보이기 때문에 결국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사회를 건실하고 재미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 밖에 없다.
조병희ㆍ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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