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재계에서는 4대 재벌과 중견 그룹들 간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현대ㆍ 삼성ㆍ LG 상위 3대 재벌은 유동성 위기와 구조조정, 신규사업 좌절 등으로 몸사리기에 바빴던 반면 두산ㆍ 롯데ㆍ 한화ㆍ 동부 등 중견 그룹들은 오히려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공격경영을 펼쳐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들 중견 그룹들은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끝내고 우량한 재무구조와 현금유동성을 바탕으로 수익성 있는 투자와 신규사업에 진출, 재계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현금재벌' 롯데는 금융업과 홈쇼핑 사업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총 1조2,000억원이 들어가는 107층 규모의 부산 제2롯데월드를 착공, 신규투자를 줄이고 사옥까지 매각하는 다른 대기업과 명암이 엇갈렸다.
롯데는 특히 올 한해 롯데호텔 파업사태 등으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지만 유통ㆍ제과ㆍ관광 등 기존 사업과 연계해 부가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투자로 기업 변신 및 이미지 회복을 노리고 있다.
2월 출범한 종합 인터넷 쇼핑몰업체 롯데닷컴은 백화점 및 할인점ㆍ편의점과 연계한 편리한 결제시스템으로 이미 회원수가 100만명을 넘었고, 11월에는 일본과 합작으로 무선 인터넷 컨텐츠업체인 모비도미(모바일도우미의 약자)를 출범시켰다.
급융업 진출과 관련,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최근 "신용카드 대금 결제와 송금, 전력요금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을 자동이체할 수 있는 결제전문 금융기관을 만들 계획"이라며 "롯데백화점, 할인점 마그넷, 롯데리아 점포망을 활용한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이은학 이사는 "내년에 백화점과 할인점 점포수를 더 늘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유통사업과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짜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품에 안은 두산은 기존 맥주ㆍ음료회사에서 '중후장대'한 제조업종에 도전장을 던지는 등 대대적인 기업변신을 꾀하고 있다. 두산은 한중 인수로 자산이 7조6,000억원에서 11조6,000억원으로 불어나 금호를 제치고 재계 랭킹 12위에서 8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구조조정 모범생' 두산은 외환위기 이후 사업재편에 착수, 3M과 코닥 네슬레 등 알짜사업을 팔고 23개 계열사를 두산 두산건설 두산포장 오리콤 주력 4개사로 통합하는 등 대대적인 군살빼기에 나섰다.
그 결과 부채비율을 158.7%로 줄였으며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중공업 발전설비 부문을 그룹의 미래산업으로 정한 뒤 마침내 한중 인수에 성공, 새로운 도약의 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용만 두산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한중 인수는 지루한 외환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 향후 두산의 100년 미래를 견인할 성장엔진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대한생명 인수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대한생명의 매각방안이 확정되면 해외 합작 파트너와 컨소시엄을 구성, 인수전에 본격 뛰어들 계획이다.
한화 구조조정본부 이명섭 이사는 "대생을 인수하면 기존 증권과 투신운용에 보험을 묶어 경쟁력 있는 금융소그룹으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매각 방법과 일정 조건 등에 관한 정부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는 올해 인터넷 기업 분사 등으로 지난해 22개였던 계열사가 25개로 오히려 늘었다. 대신 석유화학과 유통ㆍ레저, 금융 3개 분야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동부는 금융과 건설 외에 반도체 사업을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정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동부전자가 일본 도시바와 제휴,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앞으로 국내외에서 7억달러를 신규 투자할 계획이다.
동부 관계자는 "반도체를 21세기 그룹 주력 사업 중 하나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기존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달리 미래 생존전략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투자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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